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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 39. 미련

괴담수사대/괴담수사대-외전

명계의 법정은 매일 쏟아져 나오는 망자들로 정신이 없었다. 그것은 망자들의 죄를 심판하는 법관들의 입장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라, 재판을 받는 망자들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음? ”

열차가 막 도착하고, 자료를 받은 데메테르는 미간을 찌푸렸다. 아직 갓 스무살인 여자였지만 죄목에 낙태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낙태가 죄목에 있는 경우는 꽤 있었지만, 이번에 들어온 망자는 낙태라는 죄목을 달고 들어오기에는 너무 어렸던데다가, 삼신당에서 재판이 끝나면 그 여자를 잠시 맡겠다는 연락이 와 있어 의아했다. 

“다음, 1768번 들어오세요. ”

대기실에서 기다리던 어린 여자가 재판정으로 들어서자, 열두명의 재판관들이 보였다. 저마다 서류를 넘겨보던 재판관 중 대다수는 판결을 패스했고, 아프로디테와 헤라는 오히려 불쌍하다며 가산점을 주었다. 그것은 하데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데메테르의 차례가 되자, 데메테르는 그녀에게 물었다. 

"1768번은 낙태를 한 적이 있었군요. "

데메테르가 입을 열자마자, 그녀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재판정에서 재판을 지켜보던 직원들마저 저 사람 저러다가 쓰러지는 것 아닌가 걱정할 정도였다. 

"저는 양육에 관한 죄를 심판하는 법관입니다. 양육이라는 건 아이를 품고, 낳고, 사랑으로 기른 다음 때가 되면 둥지에서 내보내는 것이예요. 그런데 당신은 자신이 품고 있던 아이를 죽였습니다... 거기다가 당신은 결혼을 하기에는 상당히 어린 나이였어요. "
"...... "
"어째서 그런 선택을 한 것인지 말씀해보세요. "

그녀는 그 자리에 쓰러지듯 주저앉아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계속 미안하다는 말만 반복하며 서럽게 우는 그녀를 보다못한 제우스는, 그녀를 다그치려던 데메테르를 만류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일단 조금 진정되면 다시 얘기를 들어보도록 하죠. 이대로는 변론을 듣기가 어려울 것 같네요. "
"...... "
"10분간 휴정하겠습니다. "

제우스가 휴정을 선언하자 옆에서 재판을 지켜보던 직원이 따뜻한 차를 내 왔고, 모든 과정을 위에서 보고 있던 헤라가 내려가 그녀를 달랬다. 

"저희는 벌을 주려는 게 아니라, 1768번이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듣고 싶을 뿐이예요. 왜 아이를 보내게 된 건지, 그리고 왜 그렇게 울게 된 건지... "
"아직 진행중이었군요. "
"당신은...? "
"올 시간이 다 되었는데도 오지 않아서, 직접 데리러 왔습니다. "

그녀를 다독이는 헤라에게 인사를 건네며, 저승 삼신이 법정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휴정 시간이 끝나 그녀가 재판장에 다시 섰을 때, 재판관들도 저승 삼신을 발견했다. 삼신당에서 이 곳까지 오는 것도 이례적인 일이었지만, 저승 삼신이 손수 온다는 것 역시 이례적인 일이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이 아이의 사연에 대해서는, 제가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
"변론을 청하는 이유가 따로 있으십니까? "
"이쪽은 아이를 보낸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변론을 제대로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닙니다. 아이를 여읜 부모는 내장이 끊어지는 고통을 평생 안고 간다지요? 이 아이는 아직 그 고통을 감내하는 법을 모르고 있습니다. "
"그러고보니 삼신당에서 1768번을 맡겠다고 했었죠... 좋습니다. 대신 변론할 것을 허락합니다. "

저승 삼신은 그녀를 대신해 재판정에 섰다. 그리고 재판관들에게 인사를 올리고, 변론을 시작했다. 

"이 아이는, 얼마 전에 아이를 떠나보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이 아이의 의지가 아니었습니다... 이 아이의 이름은 이 홍, 살아있었다면 대학에 갓 들어갔을 나이이지만 자신이 품던 아이와 함께 이 곳에 오게 되었지요. "

그녀에게는 남자친구가 있었다. 고등학교 3학년때 처음 만나서 사귀었고, 수능을 목전에 두고 있었던 두 사람은 함께 독서실에서 공부하고 저녁으로 분식집에서 식사를 하는 게 데이트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두 사람은 부모님 몰래 예쁘게 사랑하면서, 서로 지망하는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열심히 공부를 했다. 

그리고 수능을 마친 두 사람은 자유의 몸이 되었다. 그 즈음에는 서로의 부모님께 말씀드렸기 때문에 더 이상 몰래 연애를 하지 않아도 되었고, 두 사람은 그 동안 가보기로 했던 여러 곳을 함께 다니며 예쁜 사랑을 했다. 수험생 혜택으로 영화도 보고, 함께 게임도 하고, 놀이공원에 가기도 했다. 

"거기까지는 알고 있습니다. 남자친구와 정말 예쁘게 사랑했었죠. "

부모님이 집을 비운 날, 그녀는 남자친구를 집으로 불렀다. 마침 새로 산 보드게임도 있었으니, 남자친구와 처음으로 함께 해 보고 싶어서였다. 새로 산 보드게임을 하면서 두 사람은 점점 가까워졌고, 그러다가 남자친구의 품에 안겼다. 

"이 아이는 불안했습니다. 아이가 생기기라도 하면 어떻게 할까... 그래서 거절하려고 했습니다. 그런 이 아이에게 남자친구는 아이가 생기면 결혼하자고 했지요. "

남자친구가 그녀를 사랑하는 만큼, 그녀 역시 남자친구를 사랑했다. 하지만 여기서 더 나가면 안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만약 아이가 생기면 어떻게 하지, 불안해하며 남자친구를 떼어내려던 그녀에게 남자친구는 괜찮다며, 이참에 아이가 생기면 결혼하자며 그녀를 안심시켰다. 그리고 두 사람은 사랑을 나누었다. 

얄궂게도, 삼신은 그런 두 사람에게 아이를 점지했다. 그녀의 뱃속에 새 생명이 자라고 있었고, 남자친구도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녀의 뱃속에 아이가 생겼다고 했을 때, 남자친구의 표정이 묘하게 일그러진 것 같았지만 기분탓이려니 했다. 

부모님 입장에서는 날벼락이 따로 없었다. 그녀의 부모님 입장에서는, 금이야 옥이야 길렀던 딸이 대학에 들어가기도 전에 애엄마가되어버렸다. 남자친구의 부모님 입장에서는, 예쁘게 사랑하고 지켜줘도 모자랄 여자친구와 덥석 하룻밤을 지냈고, 덜컥 아이가 생겼다. 남자친구의 부모님은 그 길로 남자친구와 함께 그녀의 부모님을 찾아가 무릎을 꿇고 연신 사과했다. 

"이 아이는, 남자친구의 이야기를 철석같이 믿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비록 원하지 않았던 아이였지만... 그래도 남자친구와 결혼해서 기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남자친구는 그렇지 않았지요. "

그녀는 남자친구와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싶었다. 아직 어리지만, 그래도 아이를 이대로 보낼 수는 없었던데다가 남자친구도 아이가 생기면 결혼하자고 했었다. 그런데, 막상 그렇게 말했던 남자친구는 결혼을 주저하고 있었다. 군대 문제도 있고 대학생활과 육아를 병행하기 힘들거라는 허울 좋은 이유를 내세운 그는, 이후 연락이 뜸해지는가 싶더니 어느 순간 연락조차 받지 않았다. 그 뒤로 그녀는 남자친구의 부모님을 몇 번 찾아갔지만, 남자친구의 부모님이 할 수 있는 건 그녀를 매몰차게 내치는 남자친구를 면전에서 혼내는 것과 그녀를 다독이는 것 뿐이었다. 

그녀의 부모님도 처음에는 그녀가 아이를 낳겠다면 육아를 도와줄 생각이었다. 어찌되었건 두 사람 입장에서는 첫 손주가 생긴거니까. 그렇게 호언장담했던 남자친구가 막상 아이가 생기고 나니 연락을 끊고 차버렸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녀의 부모님도 그녀의 미래를 위해서 아이를 하늘로 보낼 것을 선택했다. 이대로 아이를 낳고 미혼모로 사는것보다는, 그 편이 현실적으로 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눈물을 머금고 아이를 지워야 했다. 아이를 지우러 가는 날, 그리고 아이를 지우고 나서, 그녀는 서럽게 울었다. 하늘로 보낸 아이에 대한 미안함과 호언장담으로 자신을 속여놓고 도망친 남자친구에 대한 원망때문이었다. 그때 끝까지 거절했더라면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텐데, 아이가 생길 일도 없었을거고, 이 아이도 다른 부모에게서 태어나 축복을 받고 살아갔을텐데, 그녀는 서러움에 하루종일 울었다. 

"아이를 보내고 그 후유증으로, 이 아이도 어린 나이에 아이와 함께 이 곳으로 오게 된 것입니다. 데메테르여, 이 아이는 비록 자신이 품고 있던 아이를 떠나보냈지만 그것은 이 아이의 의지가 아니었음을 믿어주세요. 그렇지 않았더라면... 아이를 보낸 날 이 아이가 그리 서럽게 울지 않았더라면, 삼신당에서 이 아이를 맡을 일도 없었을 것입니다. 또한 삼신이 그토록 분노하는 일도 없었을테지요. "
"...... "

저승 삼신의 변론이 끝났을 때, 데메테르는 울고 있었다. 

"미안합니다, 1768번... 그 어린 나이에 낙태를 했다기에 저는 당신을 오해하고 있었습니다. "
"...... "
"제우스, 매겼던 점수를 변경하겠습니다. 비록 1768번이 몸에 품고 있던 아이를 먼저 보내긴 했지만, 그건 1768번의 의지가 아니었어요. "
"알겠습니다. 1768번, 비록 낙태를 하긴 했지만 본인의 의지가 아니었던 것을 감안하도록 하겠습니다. 이 정도 점수면, 그리고 1768번의 태도로 보아서는 저희쪽에서 구형을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이만 판결을 마치겠습니다. "

재판을 마친 후, 저승 삼신은 그녀를 데리고 삼신당으로 돌아갔고 법관들은 다음 재판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고보니, 남자친구라는 사람 말입니다. 1768번의 장례식장에는 왔던가요? "
"글쎄요, 그것까지는 저희도 모르겠습니다. 스스로 생을 마감한 것도 아니라 스틱스에 등재되지도 않았을거고... 남자친구가 죽어야나 알겠죠. "

삼신당으로 오자마자, 저승 삼신은 그녀를 툇마루에 앉히고 차를 한 잔 내어 왔다. 

"아이는 방금 잠들었단다. "
"감사합니다. "
"다 괜찮을게다. "

저승 삼신은 홍을 달래고, 홍이 데려온 아이에게 분유를 먹였다.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였지만, 어째서인지 삼신당에 온 아이는 갓 태어난 아이처럼 분유를 먹고 자라고 있었다. 홍이 엄마라는 걸 알고 있는 모양인지, 홍을 보며 방긋 웃기도 했다. 

홍은 삼신당에서 지내면서 저승 삼신의 일을 도왔다. 그리고 어느새 무럭무럭 자란 아이 역시 홍을 따라 저승 삼신의 일을 돕고 있었다. 그렇게 아이가 세 살이 될 무렵, 갑자기 삼신당에서 홍과 아이가 사라졌다. 홀연히 사라질 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 저승 삼신은 쓸쓸히 웃었다. 

"부디 미련을 떨쳐냈으면 좋겠구나. "

삼신은 홍이 저승에 오게 된 경위는 물론이고 남자친구가 장례식에 오지 않았다는 사실까지 알고 있었다. 이 사실을 듣고 크게 분개해서, 삼신은 몇 번을 환생하더라도 단장의 고통을 세 사람에게 안겨준 그 놈에게는 평생 슬하에 자식을 두지 않겠노라 선언했다. 아마 천 마리의 새끼를 품은 검은 산양이라도 그랬으리라. 

저승 삼신이 홍과 아이의 행방을 알게 된 것은, 몇년 후 파이로가 찾아왔을때였다. 홍과 아이가 남자친구의 곁을 맴돌면서 괴롭히고 있다는것과, 뭔가 석연찮아서 시간을 벌고 어찌 된 일인지 조사했다는 파이로에게 그녀는 한 가지 질문을 던졌다. 

"너는 엄마와 아이가 어찌 되었으면 좋겠느냐? "

부디 남자친구에 대한 원한을, 그리고 미련을 떨쳐내고 좋은 곳으로 가기를. 그것이 저승 삼신이 홍에게 바라고 있던 것이었다. 하지만 홍은 결국 그 미련을 떨쳐내지 못하고 남자친구의 곁을 아이와 함께 맴돌고 있었다. 

납골당에 도착해서야 모든 사정을 전해들은 미기야 역시 의뢰를 거절했다. 그를 위해 괴담수사대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리고, 아무것도 없어야 한다. 작정하고 파이로의 혼불로 태워버린다면 홍과 아이를 태워버릴 수도 있었지만, 전말을 알게 된 파이로는 그렇게 하지 않았고 오히려 남자친구에게 마지막 인사도 하지 않은 진성 썩을놈이라며 앞으로 그의 팔자에 자식은 없을 것이라는 독설을 했다. 

파이로와 미기야가 납골당 밖으로 나가자, 남자친구는 그녀의 유골함 앞에서 미안하다며 오열했다. 여자친구를 명계로 보내고, 자신의 아이를 명계로 보내고, 여자친구의 부모님과 여자친구까지 세 사람에게 단장의 고통을 안겨준 지 몇 년이 지나서야 가까스로 사과를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사과가 조금만 더 빨랐더라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 적어도 장례식장에 가서 마지막 인사라도 했더라면. 아니, 사랑을 나누기 위해 그런 호언장담만 하지 않았더라도. 어쩌면, 홍이 갖게 된 미련은, 오래 전에 남자친구가 만들어준 것일지도 모른다. 스스로가 자아낸 미련이, 스스로를 도망치고자 했던 여자친구와 그를 묶어두고 있었다. 

"사과가 늦어도 한참 늦었군요. "
"...... "

오열하던 남자친구의 등 뒤에서 말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그 곳에는 금발 머리를 독특하게 깎고 손바닥이 없는 장갑을 낀 남자가 서 있었다. 검은 정장 조끼 안에 흰 셔츠를 입은 남자는, 오열하는 그를 한심하다는 듯 바라보고 있었다. 

"약속은 함부로 하는 게 아닙니다. 그것이 타인과 얽힌 약속이라면 더더욱. 보세요, 당신이 순간의 쾌락을 위해 했던 호언장담이 지금 당신을 어떻게 옭아매고 있는지를. "
"......! "
"당신을 지금 데려가지는 않을겁니다. 앞으로 수명이 꽤 남아있으니까요. "

남자는 그의 옆을 맴돌던 홍과 아이의 유령을 향해 손짓했다. 홍과 아이가 남자의 옆으로 가자, 남자는 납골당 문을 나서 어딘가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 

"자식을 잃은 고통은, 내장이 끊어지는 고통에 비유한다죠. 지키지도 않을 약속으로 그런 고통을 세 사람에게 안겼으니, 당신은 그 말에 스스로를 옭아맸고 앞으로도 그 고통을 몇 곱절로 되돌려 받으실겁니다. "

남자가 돌아간 후로도, 그는 남자가 남긴 말을 곱씹으며 한참을 우두커니 서 있었다. 

"당신이 죽인 사람들을 불러들인 건, 당신이 순간의 쾌락을 위해 자아낸 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