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괴담수사대

XVII-5. 끝, 그리고 시작

허니버터뚠뚜니라이츄 2023. 11. 27. 00:14

임무차 다른 곳에 갔던 태형은 차를 몰고 다리를 건너는 중이었다. 

“밤에 보는 한강은, 그 나름대로의 멋이 있지. ”

캄캄한 하늘에 보이는 건물의 실루엣과 별을 박아둔 것처럼 수놓은 불빛들, 그리고 간판의 네온사인이 선명하게 보인다. 한강물의 물결이 반짝이면서 흐르는 것이 간간이 보였다. 

“앗, 아저씨! 저기! ”
“응? ”

미래가 가리킨 곳에는 사람이 한 명 서 있었다. 멀어서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뭔가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낀 태형은 난간쪽에 차를 세우고 미래가 가리킨 곳으로 갔다. 미래가 가리킨 곳에 서 있었던 것은, 5~60대는 되어 보이는 중년의 여성이었다. 여성은 다 포기한듯한 눈으로 다리 아래를 보고 있었다. 

“부인, 무슨 일이라도 있으신가요? 안색이 좋지 않아 보입니다. ”
“...... ”
“여기서 얘기하기는 뭣하니, 일단 저와 함께 가시죠. 제가 근처 지하철역까지 태워드리겠습니다. ”

여성을 차에 태운 태형은 어째서 이 시간에 한강 다리에 있는지를 물었다. 그러자 여성은 한숨을 푹, 쉬더니 이야기를 꺼냈다. 

“저에게는 갓 서른살이 된 아들이 있어요. ”

여성은 슬슬 은퇴를 생각할 나이였지만, 그럴 수 없었다. 갓 서른이 된 아들이 아직도 취업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취업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보통은 취업을 못 하더라도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취업을 위해 노력이라도 할텐데 아들은 그조차 하지 않았다. 

아들은 소위 말하는 히키코모리였다. 고등학생때 심한 따돌림을 당해 자퇴를 했고, 그 뒤로 검정고시를 합격하고 수능을 쳐서 대학은 어찌어찌 갔지만 대학도 곧 자퇴했다. 왜 자퇴했는지는 굳이 묻지도 않았고, 물어 볼 생각도 없었다. 그저 그렇게 부딪히고 깨져도 열심히 굴러, 제 몫을 해내길 바랐을 뿐이다. 

“방에서 나오지도 않고, 항상 안에서 게임만 하면서 틀어박혀 있어요. 방에 누군가 들어오게 하지도 못하고요... 심기를 조금이라도 거슬렸다간 주먹이 올라가서 어떻게 하지도 못 해요. ”
“그럼 아줌마 혼자 그 아들을 먹여 살리고 있었던거예요? 형제자매는 없었어요? ”
“밑으로 여동생이 하나 있는데, 내가 나랑만 간간이 연락하고 절대 집에 오지 말라고 했어. ”
“왜요? ”
“그게 말이다... ”

여자는 슬하에 아들과 딸 하나씩을 두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딸은 다른 곳에 나가서 자취를 하고 있고,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로는 집에 일절 찾아오지도 않았다. 어쩌다 찾아오려고 해도 여자가 찾아오지 못 하게 하고 있었다. 

“장을 보러 갔다가 왔는데, 집에 경찰이 와 있어서 무슨 일인가 했더니... 아들이 딸을 강간하려고 했었어... 그 뒤로 집에 단 둘이 있으면 무슨 일이 생길 것 같아서, 작은 고시원을 잡아서 거기로 보내줬단다. ”
“그 따님은 지금 뭘 하고 계신가요? ”
“지금은 번듯한 직장을 구해서, 거기서 일하고 있어요. 남자친구도 생겼다고 했고요. ”
“그러시군요... ”
“제 배 아파서 낳은 아이지만, 이제는 지쳤습니다. 저도 나이가 들었고... 남편이라도 살아있었다면 어떻게든 했을텐데요... ”
“...... ”

태형이 잠시 무언가를 생각할 무렵이었다. 

“아저씨, 거기에 한번 연락해보면 안 돼요? ”
“거기? ”
“네. ”
“글쎄, 도희 언니에게 연락해보겠니? 아저씨도 바로 연락은 힘들어서 말이다. ”

미래가 어딘가로 전화를 걸고 잠시 후. 

“도희 언니가 뭐라고 하던? ”
“아줌마도 같이 사무실로 오래요. 금방 올 거라고... ”
“그래? ”
“아줌마, 저희랑 같이 가면 힘든 거 싹 없어지게 해줄 수 있어요. 원래 저녁에는 잘 안 오는데, 아줌마 얘기를 듣고 특별히 도와주겠다고 했어요. ”

무슨 말인지 의아해하는 여자를 데리고, 둘은 사무실로 도착했다. 그리고 사무실로 도착한 여자가 본 것은, 아웃사이더와 함께 앉아있는 도희였다. 태형과 미래는 둘에게 인사를 건네고 여자와 함께 소파에 앉았다. 

“이 쪽이구만. 한 눈에 보기에도 삶에 찌든 정도가 아니라 지쳐있는데... ”

어리둥절한 여자에게 아웃사이더는 도희의 연락을 받고 왔다면서, 자신을 ‘이 일상을 끝내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일단 우리 팀의 의뢰를 받게 되면 아드님을 부양해야 할 의무는 없어지지만, 새로운 사람으로 태어나는거기 때문에 앞으로 따님이랑도 못 만나게 될거예요. 의뢰를 할 지 말지는 당신의 자유고요. ”

아웃사이더의 이야기를 들은 여자는 잠시 망설였다. 더 이상 아들을 부양하지 않아도 된다는 건, 내가 버는 돈을 더 이상은 아들에게 쓰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이다. 아들의 화를 감당하지 않아도 되고, 더 이상 밤 늦게까지 일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이제 딸을 더 이상 만날 수 없다. 말 그대로, 새로운 사람이 되기 때문이었다. 

“어머니와 딸이 아니더라도, 나중에 제 딸을 만날 수 있겠죠...? ”
“우리 팀을 거쳐간 사람들 중에 그런 케이스가 있었어요. 만날 사람이면, 당신이 새로운 사람이 된 다음에도 어떤 형태로든 만날거예요. ”
“...... 그럼, 부탁드립니다. ”
“좋아요. 우리 팀의 서비스는 확실하니까, 뒤탈 없이 당신의 신분을 완벽하게 바꿔줄 수 있어요. 대신 우리 팀의 서비스를 이용하게 되면 당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이 지워질거고, 당신의 친구나 가족들도 더 이상 만나지 못할겁니다. 그럼에도 정말 우리 팀의 서비스를 이용하실건가요? ”
“네. 더 이상 아들때문에 힘든 일상을 보내고 싶지는 않아요. ”

여자를 데리고 아지트로 간 아웃사이더는 메모리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딸이 있었음에도 여기까지 올 정도면, 아들이 무지하게 막장이었나보네요. 여기까지 견뎌오신 걸 보면, 정말 어머니란 위대한 것 같습니다. ”

여자가 퍼펫, 모델러와 함께 이야기를 나눌 동안 제로는 여자의 모든 것을 조회했다. 

“이 사람, SNS는 하나도 안 하네. 은행 잔고도 얼마 없어서 되려 우리가 줘야 하는 거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야. ”
“아들이 다 해먹은거지. ”
“월급이 매달 25일에 들어오는 모양이니, 내일 이것까지 밭고 은행 계좌 싹 정리하면 될 것 같긴 한데... 하아... 뭔가 사연을 듣고 보니 찝찝하단말이지... 아들이 해먹은 거, 다시 토해내서 주고 싶은 심정이야. ”
“그럼 아들 것도 한번 조회해봐. 거기 남아있는 거라도 털어야지. ”
“OK. ”

여자의 통장 잔고를 조회한 제로는, 여자의 아들 명의로 된 계좌도 조회했다. 

“와, 여기는 통장이 아니라 텅장이네. 엄마 돈으로 엄청 호의호식하고 사는구만? ”
“호의호식이라기엔 전부 게임 아이템인데? ”
“왜, 소위 말하는 쌀먹이라고 하잖아. 이게 아마 다 고강 무기일텐데, 이런 거 강화 엄청 해서 팔면 돈 되거든. 어머니 돈으로 게임 아이템 사고, 과금한거지. ”
“어머니 통장 아직 정리 안 했지? ”
“내일 하려고. ”
“그거 일단 둬봐. ”
“어쩌려고? ”
“아들이 해먹은 건 되찾아줘야지. ”

아웃사이더가 어딘가로 전화를 걸자, 어머니의 통장으로 1억원이 들어왔다. 

“됐어, 이제 내일 월급 들어오면 바로 정리하면 돼. ”
“어떻게 한 거야? ”
“아들이 해먹은 거 되찾겠다고 했잖아. 아는 형님중에 4금융권 하시는 분이 계셔서 돈을 좀 빌렸어. ”
“그거 그렇게 막 빌려도 돼? 우리 1억 갚을 저기 안되잖아. ”
“아, 그것도 해결 봤으니까 괜찮아. 사정 설명했더니 그 집 아들한테 받겠다고 했거든. ”

여자의 모든 것을 정리하기 전, 여자는 제로의 배려로 딸에게 마지막 문자를 보낼 수 있었다. 여자는 딸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었던 말과 함께 사랑한다는 인사를 하고, 제로에게서 새 통장을 받았다. 새 통장에 1억이 넘는 돈이 들어있는 것을 본 여자는, 두 눈이 휘둥그레해졌다. 

“제 통장에 이렇게 많은 돈이 있었나요? ”
“아드님이 해먹은거, 전부 토하게 했어요. 새로운 사람이 되면, 이걸로 넉넉하게 지내셨으면 좋겠습니다. ”

아들이 그 동안 허투루 썼던 돈을 돌려받고 새로운 사람이 된 여자는, 홀아비로 지내던 남자를 만나 결혼을 했다. 남자에게는 아들이 있었기 때문에 처음에 두 사람은 아들이 결혼을 반대하는 게 아닐까 했지만, 오히려 아들은 지금까지 홀로 자신을 키우느라 외롭지 않았느냐면서, 아버지만 행복하면 된거라면서 두 사람을 적극적으로 밀어주었다. 그렇게 여자가 새로운 남편과 아들을 만나 새로운 가족을 꾸리고 살 무렵, 아들이 결혼할 사람이 생겼다면서 데려온 사람이 이전에 여자의 딸이었던 사람이었다. 

“아가씨, 괜찮아요. 저도 가족이 없이 홀로 살다가 이렇게 지금의 남편과 아들을 만났으니까요. 아가씨만 괜찮다면 제가 아가씨의 어머니가 되어드리고 싶은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
“어머님... ”

새로운 가족을 만난 여자는, 이전에 딸이었던 여자와도 다시 가족이 되었다. 이전에는 누려본 적 없었던, 단란한 가족이었다. 

한편, 여자가 이전에 살던 집에는 하루가 멀다하고 양복을 입은 건장한 사내들이 들이닥쳤다. 

“얌마, 돈을 빌려갔으면 갚아야 할 거 아냐! ”
“무슨 말이야, 난 돈 빌린 적 없어! ”
“니 엄마가 돈 빌리고 날랐으니까 아들인 니가 갚아야지, 무슨 소리야! ”

여자가 팀 반델을 이용할 때 아웃사이더를 통해 빌렸던 1억은, 고스란히 아들의 빚이 되었다. 서류상으로 여자는 실종 상태가 되었고, 빚만이 남아있었다. 물론 여자의 슬하에는 딸도 있었지만, 아웃사이더에게서 자초지종을 전해들은 그들은 딸에게는 가지 않았고 철저히 아들에게서 빚을 받아내고 있었다. 1억을 준비할 여력이 없었던 아들이 여전히 방에 틀어박혀있을 동안, 이자는 자비없이 붙어서 몸을 불리고 있었다. 

그리고 결국, 아들은 건장한 사내들에 의해 강제로 끌려가 돈을 갚기 위해 일해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 아들이 가지고 있던 게임 콘솔이나 굿즈들 역시 빚을 갚기 위해 전부 팔아야 했다. 

'괴담수사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외전 33. 주인을 스스로 정하는 건물  (0) 2023.12.06
XVII-6. 공조  (0) 2023.11.27
XVII-4. Buster Call  (0) 2023.11.21
XVII-3. 긴급탈출  (0) 2023.11.15
XVII-2. 허상을 위해 실제를 바치다  (0) 2023.11.01
Comments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