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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수사대

XVI-5. 분노의 심장과 음욕의 피

허니버터뚠뚜니라이츄 2023. 10. 1. 22:29

「사람이 슬기로우면 좀처럼 화를 내지 않는다. 남의 허물을 덮어주면 영광이 돌아온다.- 잠언 ‭19:11‬
쾌락에서 슬픔이 생기고, 쾌락에서 두려움이 생긴다. 쾌락에서 해탈할 수 있는 인간에게는 이미 슬픔도 두려움도 없다.- 석가모니」

일곱가지 죄를 지은 자를 제물로 삼는다면, 앞으로 두 명이 더 실종될 것이다. 그리고 아직 시신으로 발견되지 못 한 사람들도 두 명 남아있었고, 그들도 어딘가 한 곳이 잘린 채 발견될 것이다. 그러던 와중, 괴담수사대는 살인사건 현장에 가게 되었다. 

“실종사건도 골치아파 죽겠는데 살인사건이 추가됐구만... ”
“이게 어떻게 된 건가요? ”
“저희도 방금 와서 뭐가 뭔지 모르겠습니다. 문 앞에 피가 흘러나와서 이상하게 생각한 이웃집 주민이 신고를 했고, 도착해보니 이 상황이었어요. ”
“허어... 라우드 씨, 일단 영상을 확인해주세요. 피가 흘러나온걸로 봐서 사건은 간밤에 있었던 듯 합니다. ”

시신에 손을 얹고 영상을 확인한 라우드는 흠칫 놀랐다. 

“대체 제물로 뭐가 필요하길래 이런 식으로 사람을... ”
“설마, 예의 그 실종 사건 용의자와 동일인물입니까? ”
“네. 그런데 뭔가 달랐어요... 이번에는 가면도 쓰지 않고, 이전처럼 주도면밀한 면도 없었어요. ”
“피칠갑을 해둔 거 보면 그래보여... 대체 뭐가 필요하길래 이 지경까지 만든건지는 모르겠지만... ”

이번에 현장에서 발견된 시신은 부부로 보이는 중년 남성과 중년 여성이었다. 남성쪽은 가슴쪽으로 심장을 적출한듯한 흔적이 있었고, 여자쪽은 손목이 잘린 채 죽어있었다. 현장에서 확인한 결과로는, 어떤 수단으로 두 사람을 먼저 죽인 다음 심장을 적출하고 손목을 잘라냈다는 결론이 나왔다. 

“동일범의 소행이 맞다면, 일단 우리가 할 일은 의식 장소를 찾는 것... 그리고 이 두 사람이 뭐때문에 죽게 됐는지 알아보는 것. 일단 단죄자에게 연락한 다음 움직이는걸로 하자. 단죄자도 달의 악마를 소환하려는 놈을 찾고 있으니까. ”
“단죄자가? ”
“자신의 일을 뺏은 사람을 단죄할거라고 찾고 있더라. ”
“단죄자가 알고 있다면, 왜 지금까지 움직이지 않은건가요? ”
“워낙 주도면밀한 녀석이니까, 단죄자도 찾느라 애 좀 먹었을거다. 렌터카도 가명으로 빌렸을 정도니까. ”

파이로는 시트로넬에게 전화해 한 명이 더 실종되었고, 두 명은 현장에서 살해되었다며 사건 현장에서 본 것을 그대로 전했다. 그러자 시트로넬은 의식을 할 만한 장소를 찾아야 한다며, 실종 사건의 가해자에 대한 정보를 물었다. 

“우리쪽에서도 좀 알아봐야 할 것 같은데... 전에 렌터카 기록 내역으로 조회했는데, 가명이라 조회가 안됐거든. ”
“그런가... 알아내면 연락 줘. ”
“오냐. ”

시트로넬과 통화를 마친 파이로는 두 구의 시신이 있는 집 안을 둘러봤다. 하얀 벽지로 도배한 거실에는 가족사진이 걸려있었다. 중후해보이는 아버지와 그 옆에서 부드럽게 웃는 어머니, 그리고 두 형제가 찍힌 사진이었다. 

“라우드, 아까 영상을 확인했을 때 보였던 얼굴이 저 사진 속에 있어? ”
“오른쪽 얼굴이야. ”
“그럼 그 놈이랑 죽은 둘을 빼고도 가족이 한명 더 있다는 얘긴데... 저 둘이 부모님이고. ”
“그럼 자기 부모님을 죽였다는거야? ”
“그런 셈이지. ...일단 남은 한쪽을 찾아서 얘기를 들어보는 게 좋겠어. ”

이웃집 몇 곳을 들러 죽은 두 사람의 아들에 대해 물어본 파이로는, 실종 사건의 용의자에게 남동생이 한 명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그리고 증거를 가져가려던 경찰에게 부탁해 남동생의 연락처를 받은 그녀는, 남동생에게 전화해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부모님이 돌아가셨다는 얘기를 갑작스럽게 들어서 놀란건지, 아니면 다른 사정이 있었던건지 남동생은 매우 평온해보이는 목소리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저는 그 두분과 더 이상 만나고 싶지도 않고, 장례식에도 가지 않을 겁니다. ”

남동생은 뜻밖의 이야기를 했다. 

“뭐, 다른 사람 같았으면 ‘그래도 가족인데’라고 했겠지만, 너한테도 뭔가 사정이 있을 것 같으니 그 얘기는 하지 않을게. 부모님이 살해당했는데도 장례식조차 가지 않을 정도면 뭔가 있다고 생각했거든. 거기다가 너네 형이 범인이라면 더더욱. ”
“......형이요? ”
“어. ”

자신의 부모님을 죽인 사람이 형이라는 것을 알고 나서야, 남동생은 놀란 눈치였다. 

“입버릇처럼 말하더니, 정말 저지를 줄이야... ”
“확실히 뭔가 있는 게 틀림 없구만. ”
“...... 사실, 형이랑 저는 어머니가 달라요. ”

남동생은 형이 그렇게까지 할 수밖에 없었던 것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했다. 

“저희 엄마가 형네 엄마 자리를 꿰차고 들어왔다고, 형은 저와 저희 엄마를 싫어했어요. 어릴때는 영문을 몰라서 왜 저럴까, 생각했는데 나중에 저희 엄마와 형네 아버지가 불륜관계로 만난 거라는 사실을 알게 됐고요. 형네 어머니는 이혼할 때 형을 데려가고 싶다고 하셨는데, 전업주부라 수입도 없고 당장 아들과 함께 살 만한 집도 없어서 양육권을 가져갈 수 없었어요. ”
“양육권을 못 가져가면 양육비를 줘야 하는 거 아냐? ”
“아버지가 양육비를 안 받는 대신 면접교섭권도 없다고 못을 박아서, 형은 성인이 될때까지 엄마와 생이별을 해야 했어요. 어머니 대신이라고 하기는 뭣하지만, 형네 어머니를 만났을 때 사과드렸는데 형네 어머니는 어린 네가 뭘 알았겠냐며 너는 밉지 않다고 해 주셨죠... 성인이 된 형이랑도 만났고 그 뒤로도 연락을 종종 주고받았었는데, 지금은 지병으로 돌아가셨어요. ”
“음... 그럼 아버지가 어머니랑 못 만나게 한 것때문에 지금까지 둘 다 미워했던거야? ”
“꼭 그것때문만은 아니었어요. ”
“그럼? ”
“전에 형네 어머니를 만나러 갔을 때 형네 어머니는 저한테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어머님 잘 지켜드려야 한다’고... 아버지 절대 술 마시지 못하게 하고, 행여나 술 마실 때 주변에 있는 날붙이는 다 치우라고요. 아버지가 술만 마시면 폭력을 휘둘러서 형이나 엄마가 크게 다치곤 했거든요. 어릴때는 형이 말을 안 듣는다고 엄마랑 제가 보는데서 마구 때기리도 했어요. ”
“너도 많이 맞았겠네? ”
“저한테는 한번도 손찌검하셨던 적은 없었는데... 형이 어머님이랑 많이 닮아서 더 그랬던 것 같아요. 엄마랑 제가 말려봤는데도 통 듣질 않아서, 제가 잘 얘기해보겠다는 핑계로 형이랑 나가서 1시간정도는 시간을 때우다가 들어가곤 했어요. 그 정도면 엄마가 어떻게든 어르고 달래서 아버지를 진정시켰거든요. 그럴때마다 형이 입버릇처럼 얘기하던게 빨리 독립하던가, 아니면 언젠가 저 사람을 죽일 것 같다는 말이었어요. ”
“그런가... 그 정도면 절연을 안 하는 쪽이 더 이상하지. 그럼 너는 독립한거야? ”
“어느정도 머리가 좀 커지고 나서 진실을 알게 되니까, 역해서 둘하고 같이 지낼 수가 없겠더라고요. 그래서 군대 전역하고 1년정도 일하면서 돈 모아서 적당한 월셋방 구해서 나왔어요. 나오면서 두 사람한테도 말씀 드렸고... 그때는 저도 자리가 아직 잡히지 않은 상태였고, 형도 대학원 다닐 때라 멀리 갈 수 없어서 졸업하면 같이 살기로 했었는데 이 사달이 난거예요. ”
“...... 너한테는 괜한 소리를 한 것 같아서 미안하네. ”
“아닙니다. ”

남동생과 연락을 마친 파이로는 남자가 다니던 대학원 실험실을 찾아갔다. 

“여기 안주혁 학생이라고 있지? ”
“주혁이요? 아... 그게... ”

남자의 이름을 들은 학생들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나갔구만? ”
“나갔다고 해야 할지, 쫓겨났다고 해야 할지... ”
“그래? ”
“주혁이는 왜 찾으세요? ”
“아, 그게 말이지... 살인사건에 휘말려서 찾고 있거든. 그 녀석이 살인 사건의 키 카드인데 사라져서 행적을 쫓는 중이야. ”
“아... 여기서 얘기하기는 좀 그러니까, 잠깐 나가시죠. ”

실험실에서 제일 연장자로 보이는 여자는 파이로와 함께 밖으로 나왔다. 자판기에서 이온음료 한 캔을 뽑은 그녀는, 벤치에 앉아 음료수 캔을 열었다. 

“대학원에서는 어지간히 막장이 아닌 이상 쫓아내는 일까지는 없지 않아? ”
“그렇죠, 어지간히 막장이 아니면... 근데 주혁이는 그 정도를 넘어서 진짜 막장이었어요. ”
“무슨 일이 있었길래 그래? ”

여자는 한숨을 한번 쉬더니, 이야기를 시작했다. 

“4학년 1학기 마치고 실험실에 들어왔을때부터 뭔가 심상치 않긴 했어요. 그래도 실험 방법같은 거 가르쳐주면 곧잘 하긴 했는데... 실험 머리는 있는데, 커뮤니케이션이 많이 결여된 느낌이었어요. 교수님께 할 말, 못 할말 구별 못하고 막 지르는건 기본이고 실험이 조금이라도 안 풀리면 욕을 하질 않나... ”
“막장이구만... ”
“후배가 자기가 가르쳐주는 대로 안 하면 욕지거리 하기 일쑤라 걔가 있을 때는 실험실에 아무도 들어오질 않았어요. 교수님도 그래서 내보내려고 벼르고 있었고... 그러다가 일이 터져버린거죠. 쉬는 날 실험을 가르쳐준다는 명목으로 여자 후배를 실험실로 불러내서 성폭행하려던 게 걸렸거든요. ”
“...... ”
“그 때 제가 실험실에 안 들렀더라면 정말 큰일날 뻔 했죠... 교수님께 보고드리고 그 후배는 좀 괜찮아질때까지 쉬게 하고, 그 후배가 돌아오기 전에 주혁이를 내보낸거예요. ”
“그 정도면 내보내는 게 맞지... 그런 사람이 랩장 맡으면 있던 사람들도 다 나갈테니... 그래서 다들 표정이 그렇게 안좋았구만? ”
“걔, 저 포함해서 지금 실험실에 있는 애들한테는 거의 트라우마같은 존재예요. ”

조사를 마친 파이로가 사무실로 돌아가고 있을 무렵, 시트로넬에게서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
“좀 알아봤어? ”
“어. 가해자는 안주혁, 올해 28살이고 D 대학교 화학과. ”
“D 대학교라... ”
“이 정도면 위치 찾을 수 있겠어? ”
“소재지만 알면 금방 찾을 수 있지. 아마 의식은 다음 주 금요일에 할 거야, 달의 악마를 만나려면 보름달이 뜨는 밤에 의식을 해야 하니까. ”
“다음주 금요일... 알겠어. ”

전화를 끊은 파이로는 사무실로 돌아갔다. 

“나 왔다. ”
“조사는 어떻게 됐어? ”
“인생이 그냥 개막장이던데? 남동생 하나 있긴 한데, 부모님이랑은 절연했다고 보는 게 맞고... ”
“단죄자는? ”
“일단 의식은 다음주 금요일 밤에 할 것 같은데, 위치는 아직 특정이 안 됐... 아, 금방 찾은 모양이네. R 시에 있는 호수공원. ”
“다음주 금요일 밤, R시에 있는 호수공원이라... ”

「분노의 죄를 저지른 자의 심장을 그릇에 담고, 그릇을 음욕의 죄를 저지른 자의 피로 채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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