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식사 받아. 연인을 잃은 그 여자는 어떻게 됐을까, 생각하던 그는 아침 식사를 알리는 소리에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문 앞에 놓여진 식사를 가지고 방 안으로 들어왔다. '앞으로 몇 번이나 더 남은걸까? ' 앞으로 몇 번이나 더 이런 생활을 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하지만 물어본다고 누군가 답해주지도 않을 것 같고, 그런 것에 에너지 낭비 할 시간에 차라리 게임에 집중해서 어떻게든 결승에 가야 한다. 그래야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으니까. 아침식사로 들어온 것은 샌드위치였다. 플랫 브레드 안에 두툼한 베이컨과 양상추, 토마토, 아보카도, 피클이 들어가 있었다. 한 입 베어물면, 호스 래디시 특유의 맛이 느껴진다. 음료는 얼음이 가득 들어간 콜라였고, 디저트로는 치즈소스와 함께 나쵸가 왔다. '대학..
대회가 준비될 동안, 남은 참가자들을 위한 아침이 준비되었다. 아침으로 온 것은 도시락 전문점에서 판매하는 도시락 용기 하나와 둥근 일회용 용기 하나였다. "한 사람당 네모난 도시락 하나, 둥근 거 아나씩 가져가. " 용기를 건네받고 뚜껑을 열어보니, 안에는 도시락 전문점에서 종종 봤던 반찬들이 들어있었다. 그리고 둥근 통에는 흑미밥이 들어있었다. 흔한 도시락이군, 생각하며 수저의 포장을 뜯고 아침 식사를 한다. "라운드가 계속될수록 메뉴가 고급져간다 했는데... 이번에는 평범한 도시락이네요. " "그러게요... " 식사를 마친 인원들은 쓰레기를 갈무리한 다음, 대회에 참가할 준비를 했다. "총 한 정이랑 총알까지 받은 다음 저 쪽으로 가면 돼. " 진행 인원들은 사람들에게 총과 방호복을 나눠주었다. 방..
ID: 군필여대생 E시에 소원을 들어주는 404호가 있다고 하던데, 진짜로 소원 빌었던 사람 있어? 소원을 들어주면서 뭔가 가져간다고 하는데 뭘 가져갔음? ID: 스탠드얼굴 @군필여대생 그 건물 1층 해장국집 사장님한테 아들이 있었는데, 아들이 좋은 대학에 가게 해달라고 빌었대. 소원이 이루어져서 좋은 대학에 가긴 했는데 공무원 공부하다가 자살했다고 했나... 지금도 그 해장국집 가끔 가는데 젊은 애들이 가면 아들이 생각난다면서 서비스로 순대나 수육같은거 주심. ID: 니가가라하와와 @군필여대생 우리 회사 상무님께 들은 얘긴데, 예전에 그 건물 10층에 사무실이 있을 떄 대표님이 직원들 월급은 줄 수 있도록 넉넉해졌으면 좋겠다고 빌었대. 그 때 뭘 대가로 가져간 건 없는데 초심을 잃지 않는게 조건이라 지..
게시자: 미스테리어스 제목: [투고괴담] 소원을 들어주는 폐건물 구독자 'goathub0102'님께서 투고해주신 이야기입니다. 안녕하세요, 최근에 미스테리어스의 괴담집을 구독하기 시작했습니다. 최근 제가 겪은 이야기 하나를 투고하고자 합니다. 저는 E시에 있는 회사에 다니고 있습니다. 회사는 규모가 작은 중소기업이었지만 직원들끼리는 으쌰으쌰하는 분위기도 있었고,텃세를 부린다거나 하는 일도 없었습니다. 단 한 명, 소위 '꼰대'라고 부르는 부장님만 빼면 다 좋았죠. 능력도 없는데다가 공수표만 남발하기 좋아하는데도 회사에 잘만 다니는 걸 보면서 다들 낙하산일거다, 대표님 친구 가족이다, 대표님 가족이다, 그런 얘기가 오가곤 했습니다. 물론, 지금은 회사에 더 이상 다니지 않고 있습니다. 회사 옆에는 낡은 건..
그는 아침으로 나온 버거를 보면서, 사람이 줄어든 탓인지 식사가 점점 좋아지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오늘의 아침이 버거라는 얘기를 듣고 흔한 패스트푸드점의 버거일거라 생각했던 그의 눈앞에 놓인 것은 막대기가 꽂혀진 수제버거였기 때문이다. "와, 버거 비주얼 멋지네요. " 적당히 구워진 빵 위로 양상추와 토마토가 있고, 그 위로는 두툼한 패티와 치즈가 교대로 두 개 올려져 있었다. 그 위로는 계란 프라이와 얇게 썬 양파, 그리고 딱딱하게 구운 베이컨이 올려져 있었다. 같이 나온 감자튀김은 웨지포테이토였고, 콜라와 케찹이 곁들여져 있었다. '장갑에 냅킨까지 줬네... ' 입을 있는 힘껏 벌리고 버거를 한 입 먹어보면, 고소한 치즈의 맛과 함께 패티의 육즙이 느껴진다. 도저히 이렇게 익히기 ..
다음날도 평소처럼 아침 식사가 배급되었다. "9시 20분까지 식사를 마치고 나오도록. " 9시 20분까지 나오라는 말을 남긴 진행 요원은, 네 명분의 식사를 넣어주고 카트를 끌고 가 버렸다. 아침 식사로 온 것은 불고기 덮밥 도시락이었다. 반찬으로는 배추김치와 호박전, 그리고 무말랭이 무침이 들어있었고 도시락과 함께 따뜻한 된장국이 왔다. "매일 빵만 나오는 건 아닌 모양이네요. " "그러게요. " 아침을 먹고 쓰레기를 갈무리할 무렵, 진행 요원들이 사람들을 불렀다. "집합 10분 전이다! 나올 때 각자 구슬 주머니 챙겨서 나오도록! 쓰레기는 한 곳에 모아두면 라운드가 진행될 동안 진행 요원들이 청소할테니, 양치질만 하고 나와! " 쩌렁쩌렁 울리는 소리를 들으며 양치질을 하고 밖으로 나갔다. 어제보다 사..
아침, 그는 눈을 떴다. 그리고 두 눈에 들어온 것은 밝은 회색으로 칠해진 천장과 조명이었다. "2번방, 아침 식사 받아. " 아직 잠이 덜 깬 그는 비척비척 침대에서 내려와 아침 식사를 받았다. 아침식사로 온 것은 크림 스튜와 모닝빵 두 개, 그리고 음료로 마실 우유였다. 모닝빵 하나는 딸기잼이, 다른 하나는 버터가 발라져 있었고 한번 구운 모양인지 따뜻했다. "9시 반에 1라운드를 시작하니 식사는 오전 9시까지 마칠 수 있도록. 9시 20분에는 집합 준비가 완료되어 있어야 한다. " 아침 식사를 하고 약속한 시간이 되자, 진행 요원이 방 사이를 쩌렁쩌렁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불러모았다. 방 안에 있던 사람들이 서서히 나오자, 진행 요원들은 사람들을 줄세웠다. "지금부터 이번 게임에서 사용할 두 가지 물..
"로열 스타디움에서 곧 판데모니움 로열 출정식이 열립니다! 구경하러 오세요! " 판데모니움을 뛰어다니는 뉴스보이들은, 거리에 있는 마물들에게 홍보지를 하나씩 돌렸다. "아, 바실리스크 씨! 곧 로열 스타디움에서 판데모니움 로열 출정식이 열려요. 시간 되시면 구경 오세요. " "오늘이야? 어디... " 머리나 식힐 겸 모처럼 나왔던 바실리스크가 받아든 홍보지에는, 제 10회 판데모니움 로열 출정식! 이라는 문구와 함께 날짜가 적혀있었다. "인원이 금방 모이나보네? 마침 곧이기도 하니, 한번 구경가볼까...? " 판데모니움 로열 출정식이 열리는 스타디움은 출정식을 구경하러 온 마물들로 떠들썩했다. 자리에 빼곡히 들어앉은 마물들이 출정식을 기다리는 동안, 스타디움 안 대기실에서는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영..
자신의 과오로 인해 딸이 죽은 것을 부정하고 있다가, 진실을 목도한 한 사람은 정신을 놓아버렸고 다른 한 사람도 정신을 놓기 일보 직전이었다. 그 꼴을 처음부터 끝까지 목도하던 자식들은 독립 후 거의 절연하다시피 하며 살았다. 집에 남아있던 동생의 유품은 둘째언니가 수습해, 전부 가지고 나왔다. "인간들은 왜 자기가 이루지 못한 것을 자식에세 강요하려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군요. " 사자가 저승에 도착하고, 환생문을 지난 지 한참 된 시점이었지만 관조자는 예측된 결말을 향해 달려가는 가족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명부에 등재된 이상, 괴로운 삶을 살게 되더라도 사후 벌을 받는 것을 면치는 못하겠지. " 두 사람은 딸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원인을 제공했기때문에 스틱스에 등재되어 있었다. 그때문에 사후에도 ..
"실례합니다. " 진중하면서도 맑게 울리는 목소리가 들리더니, 사무실로 젊은 남자가 들어섰다. 한 눈에 보기에도 키가 꽤 커보이는, 진회색 니트를 입은 남자는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손에 들고 있던 짐을 문간에 내려놓고 미기야의 책상 쪽으로 다가왔다. "무슨 일이시죠? " "의뢰를 하고 싶어서 왔습니다. " "그러시군요... 잠시 저 쪽 테이블에 앉아 계세요. " 서류 더미를 내려놓은 미기야는 물 두 잔을 들고 남자가 앉아있는 테이블로 갔다. 그리고 물잔을 건넨 후, 자리에 앉았다. "의뢰는 어떤 내용이신가요? " "회사에, 악령이 있습니다. " "회사에요...? " "네. " 그는 물을 한 모금 마신 다음,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는 H시에 있는 회사에 다니고 있었다. 그 말고도, 함께 일하는 동료는 어..
ID: 회전선풍기/작성일: 20XX.10.03 22:00 무서운 얘기 들을 사람? ID: 솔로부대원수/작성일: 20XX.10.03 22:01 나! 나! ID: 북극암반수/작성일: 20XX.10.03 22:01 나! ID: 아니시에이팅/작성일: 20XX.10.03 22:02 나! ID: 회전선풍기/작성일: 20XX.10.03 22:05 우리 동네에는 이상한 건물이 하나 있어. 내부 수리중이라는 팻말이 걸려있어서 사람이 들어갈 수 없게 막아두었는데, 가끔 그 건물에서 사람이 죽었다는 뉴스가 나와. 죽은 사람들은 하나같이 처참한 몰골이어서, 시체를 발견한 사람이나 경찰들이 하루동안 멍하니 있을 정도래. ID: 북극암반수/작성일: 20XX.10.03 22:08 그 건물, 뭐 있는 거 아냐? 지박령같은 거라던가...
게시자: 미스테리어스 제목: [투고괴담] 예정된 불행 구독자 'bullseye0503'님께서 투고해주신 이야기입니다. 미스테리어스의 괴담집을 즐겨 보는 구독자입니다. 오랜만에 동창회에 갔다가 들은 기묘한 이야기를 써볼까 합니다. 중학생때, 반에 따돌림을 당하는 학생이 한 명 있었습니다. 그 친구는 조별 과제도 혼자서 하고, 아무와도 말을 섞지 않고, 점심시간이 되면 항상 식사도 혼자 하고 도서실로 사라졌다가 5교시가 시작할 즈음 돌아오던 친구였습니다. 저도 덤터기 쓸까봐 반에서는 다른 아이들처럼 말을 걸지 않았지만, 학교가 끝나고 그 친구와 함께 하교하곤 했죠. 그 친구를 주도적으로 괴롭히던 일당이 네 명 있었습니다. 반에서도 소위 노는 애들로 불리고, 선생님들도 학을 뗐다고 하는 애들이었죠. 요즘 일진..
오후, 미기야의 전화가 울렸다. 발신인은 자신을 메피스토라고 소개하며, 메피스토 상담소를 운영중이고 상담을 요구한 사람에 대해 의뢰를 하고 싶다는 말을 전했다. "저희 쪽으로 의뢰를 하신다고요? " "스토킹 건이라서요. 아무래도 공권력에 맡기기에는 못 미더운 부분도 있어서 괴담수사대에 의뢰를 하려고 합니다. " "스토킹 건이요? " "네. 설명하자면 긴데, 일단 상담소에 상담한 내용을 바탕으로 말씀드리자면 '회사 대표가 퇴사자를 스토킹하고 있다'고 하네요. 퇴사하신 분은 다른 직장에 재직중인데 말이죠. " "그럴 수가... 일단 의뢰는 받아드리겠습니다. " "감사합니다. 내담자에게는 연락처와 함께 최대한 빨리 방문하라고 안내 드리겠습니다. " 전화를 끊고 잠시 후, 건장한 청년이 사무실로 찾아왔다. 왁스..
ID: Faust_0oXlehzW Title: 시험 성적때문에 고민이예요. 시험 성적이 생각보다 잘 나오지 않아서 고민이예요. 항상 열심히 공부하는데도 노력한 만큼 결과가 나오지 않아서... 꼭 진학하고 싶은 대학교가 있어서 노력중인데, 매번 안타깝게 등급컷에 들지 못 하고 있습니다. 기를 쓰고 해봐도 안 되네요... ID: Mephisto Title: [RE] 시험 성적때문에 고민이예요. 굳이 성적에 목맬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만, 목표가 있으시다고 하니 몇 가지 도움이 될 만한 어드바이스를 드리겠습니다. 첫번째로, 자주 틀리는 유형의 문제가 있다면 오답 노트를 만들어서 해당 문제를 틀리게 된 원인을 분석하고 복기해보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두번째로, 길을 갈 때는 달리기를 할 수도 있고, 걸을 수도 ..
괴담수사대는 한정훈 형사의 연락을 받고 G 사거리의 어느 주택가로 갔다. 주택가에서 사건이 발생했다는 얘기를 듣고 갔을 때, 사건이 일어난 주택에는 사건 현장임을 알리는 테이프만 둘러져 있었다. 감식반이나 다른 사람들은 주택가 입구쪽에서 골목을 통제하고 있었고, 괴담수사대가 도착하자 길을 열어주었다. "이건... " "라우드 씨, 영상 확인하실 수 있겠어요? " "네. 아마 어제 밤에 일어난 사건이면 확인할 수 있을겁니다. " 라우드가 영상을 확인할동안, 미기야는 집 안으로 들어섰다. 문으로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벽에는 아내와 아이들이 찍혀 있는 가족사진이 걸려있었고, 집 안에는 강아지 하나가 처참한 몰골로 죽어있었다. 사이코패스 범죄자들이 강아지 시체를 보더라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처참한 몰골이었다. 그..
"여기가 괴담수사대인가요? " "그렇다만. " 미기야가 잠깐 외근을 나가고, 파이로가 사무실을 지키고 있을 때였다. 사무실에 들어선 것은 중학교 1~2학년은 되어 보이는 어린 남학생이었다. 남색의 니트 베스트 한쪽에는 파란 바탕에 하얀 글씨로 '한진우'라는 이름이 쓰여진 명찰이 붙어있었고, 베스트 안에는 남색 타이를 메고, 남색 교복 바지를 입고 있었다. "이 책 좀 어떻게 해 주세요. 돈은 어떻게든 용돈을 모아서 드릴게요... " "문제집? " 남학생이 내민 것은, 서점의 참고서 코너에 탑처럼 쌓여 있는 개념서였다. 중학생은 물론이고 고등학생들도 잠잘 때나 밥먹을 때 외에는 손에서 떼지 않는 필독서로 알려져 있는 그책은, 영어 문법과 단어를 효과적으로 외우는 법이 적혀 있었다. 파이로는 책을 받아들고 ..
괴의라 불리는 존재가 있다. 괴의는 역병 의사 가면을 쓴 주황색 머리카락을 가진, 두툼한 가죽 코트에 가죽 장갑, 가죽 부츠로 전신을 가리고 허리에 작은 가방을 멘 존재였다. 괴의를 실제로 봤다는 사람도 있었고, 뜬소문이라고 믿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괴의의 손길이 닿으면 죽어가던 불치병 환자가 순식간에 낫고, 반대로 멀쩡하던 사람이 불치병 환자가 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의술이 발달했다지만 그건 아니지, 그게 괴의를 허구로 치부하는 사람들의 중론이었다. "후아암... 잘 잤다... " 여기는 판데모니움에 존재하는 공간 중 하나인 괴의 공간. 마치 대학교나 기업에 있을법한 실험실같이 생긴 이 곳은, 두 층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하얀 내벽으로 칠해진 아래층에는 각종 실험 도구와 수..
괴담수사대는 F대에 도착했다. 실험실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났는데, 사건 현장에 정체불명의 녹색 깃털이 떨어져 있는 것 외에는 멀끔해서 아무래도 보통 사건이 아닌 것 같다며 태훈이 미기야를 통해 연락했기 때문이었다. 독살이라는 얘기에 야나기도 오랜만에 동행하게 되었다. "독살이면 상대적으로 현장이 꺠끗해야 정상 아냐? " "독을 먹고 몸부림친다거나, 토한다거나... 그런 흔적조차도 없어서 그런가보지. 녹색 깃털도 뭔가 신경쓰이고... " "녹색 깃털이라... " "아마 전에 의뢰받았던... 뭐더라? 아, 그래. 짐새... 그 녀석의 깃털이 녹색이라는 얘기를 들었거든. 뭐, 자세한 건 현장에 도착해보면 알겠지만... " 사건 현장에 도착했을 때, 녹색 깃털이 보였다. 어떤 새들도 가지고 있지 않을법한 진녹색..
"아, 빨리 오라니까. " "글쎄, 됐다는데 왜 그래? " "너 임마, 폐인처럼 지내는 게 하루 이틀이냐? 회사에서도 너 좀비같다고 그래. " 사무실 밖에서 한 차례 실랑이가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사무실 문이 열리고 두 남자가 들어왔다. 한 쪽을 끌고 들어온 남자와 달리 끌려오다시피 한 남자는, 흡사 시귀와도 같은 몰골을 하고 있었다. "오전 11시에 예약한 현재형이라고 합니다. " "아, 왔구만. 뒤에 있는 게 그 친구? " "네. 여자친구랑도 헤어지고, 완전히 좀비가 됐다니까요. " "이 정도면 시귀라고 해도 믿겠는데...? 모든 시귀가 이런 몰골인 건 아니지만... 아무튼 앉아. " 두 남자를 앉게 하고 파이로는 매실 주스를 내 왔다. "이 녀석, 어쩌다 이렇게 된 거냐? " "대만 여행을 다..
"여기가 괴담수사대인가요? " "네, 어서오세요. " 오후, 사무실 문이 열리고 젊은 여자가 사무실로 들어왔다. 목까지 오는 머리를 반묶음하고, 베이지색 카디건 안에 검은 티셔츠를 입은 여자였다. "무슨 일로 오셨나요? " "저희 엄마를 좀... 말려주세요... " "어머님께 무슨 일이라도 있으신가요? " "죽은 동생이 살아있다고 생각하세요... " "죽은 동생이... 살아있다고 생각하신다고요? 어떻게 된 일인지 말씀해주시겠어요? " 그녀는 한숨을 푹, 쉰 다음 물을 한 모금 마시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녀에게는 여동생이 둘 있었지만, 하나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부모님의 과도한 기대에서 비롯된, 과도한 집착과 공부열 때문에 지쳐버렸기 때문이다. 죽기 전에도 동생은 그녀와 다른 한 명의 여동생 빼고, ..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정구라고 해요. 집에서 엄마는 정구 혹은 내새끼라고 불렀어요. 오늘은 엄마와 같이 갈 데가 있어서, 아침부터 엄마를 기다리고 있답니다. 엄마랑 멀리 꽃구경을 갈 거예요. 석산이 만발한 곳으로 꽃구경도 가고, 맛있는 것도 함께 먹는다는 얘기를 듣고나서, 꽃구경 갈 날을 기다리면서 정말 기대했어요. 엄마는 저의 친엄마는 아니예요. 거리를 헤매던 저를 샤람들이 구조했고, 그 사람들에게서 저를 데려온 게 지금의 엄마예요. 엄마는 저를 데려오자마자 삶은 닭고기에 이것저것 섞어서 밥을 주시곤, 화장실과 잘 곳이 어디인지도 가르쳐주셨어요. 정구라는 이름도 엄마가 지어줬어요. 저는 엄마와 함께 지내는 지금이 좋아요. 저를 데리고 있었던 사람들 말로는, 부모님이 저를 버렸다고 했거든요. 그런 저를..
몇주 전 자살한 직장 동료가 계속 그의 눈에 보였다. 그냥 일면식도 없는 직장 동료였는데, 회식이 있었던 날 이후로 부고가 들려왔고, 그 뒤로 계속해서 눈에 보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회식할 때 입었던 옷을 그대로 입고 나타난 그녀는, 그를 보자마자 사랑에 빠진 눈으로 그를 '신랑'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그 뒤로는 여자를 만나려고 해도 잘 되지 않았다. 만나려고 약속을 잡으면 다른 일이 생겨서 파토를 내게 되거나, 여자쪽에서 갑자기 파토를 내기도 했다. 어쩌다가 약속이 성사되더라도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러서 애프터가 들어오지 않았다. 최근에는, 그뿐 아니라 몇 번이나 죽을뻔 하기도 했다. 머리 위로 벽돌이나 화분같은 게 떨어진다거나, 길을 가다가 오토바이나 전동 킥보드에 치일 뻔한 적도 있었다. 갑자기 걷다..
야심한 밤, F 시의 어느 고등학교 교실. 야간자율학습이 끝나고 삼삼오오 학생들이 돌아갈 무렵이었다. 시계는 오후 열한시를 가리키고 있었고, 다른 학생들이 빠져나갈 무렵 교실에는 아직 남아있는 학생들이 모였다. 다들 돌아간 것을 확인한 학생들은 교실을 나와 돌아가는 척 체육관 뒤편의 창고로 갔다. 창고 안으로 들어선 학생들은 가방에서 주섬주섬 초를 꺼냈다. "다들 초 가져왔지? " "오는 길에 하나 사왔어. " "난 집에 있는 향초. 한번도 안 쓰던거라 없어져도 모를걸... " "좋아, 그럼 사람은 여덟에 초도 여덟개... 원래 백 개가 있어야 한다는데 현실적으로는 힘드니까, 불을 끄고 다시 붙이면서 이야기하는걸로 하자. 이야기는 가급적 짧은 걸로. " "누구부터 시작할래? " "나부터 할게. " 초에 ..
미기야는 라우드와 함께 D 시의 어느 여고에 도착했다. 교문을 지키고 있는 수위에게 괴담수사대라는 것과 동아리 부실 건으로 연락을 받고 왔다는 것을 말하자, 수위는 학교 안으로 안내해주면서 교무실이 있는 건물을 가리켰다. 수위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녹음이 우거진 길을 걸어가니 금방 본관 건물에 도착했다. 수업중인지 건물은 조용한 분위기였고, 실습실마다 학생들이 한창 실습 수업을 듣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본관 건물을 둘러보던 두 사람은 교무실을 찾았다. 노크를 하고 문을 열자, 문간에 있던 나이가 지긋해보이는 남자가 둘을 맞았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 "최성현 선생님을 찾아 왔습니다. " "최성현 선생은 지금 수업중인데... 들어와서 잠깐 기다리세요. " "그럼 실례합니다. " 두 사람이 교무실에..
괴담수사대는 G동의 어느 주택가에 나와있었다. 아침부터 처참한 사건 현장을 본 라우드는 영상을 확인하다가 거의 기절할 정도였고, 현은 그런 라우드를 데리고 잠시 사건 현장에서 벗어나 있는 상태였다. 미기야는 주변에서 탐문수사를 하고 있었고, 파이로는 현장에 보이지 않았다. 백희가 든 거울을 찾느라고 시간이 좀 걸린 탓이었다. "현장 진짜 개판이네. " "파이로 씨! " "어, 왔냐... " "괜찮으십니까? 상태가 좋지 않아보이십니다. " "얘, 가끔 처참한 거 보면 이래. 사이코메트리의 부작용이라고 해두지, 뭐... 현장 난리도 아니었나보네? " "어... " "수사는 끝났습니까? " "오너가 아마 탐문수사 하고 있을거예요... " 파이로와 백희는 현과 라우드에게 간단히 인사를 건네고 현장으로 향했다. ..
지하철역이나 PC방같은 곳에, 가끔 누군가 깜빡하고 두고 가는 우산들은 종종 있다. 우산의 주인이 금방 찾으러 오기도 하지만, 어떨 때는 원 주인이 잊어버리고 가 방치되기도 하고, 그런 우산을 급할 때 우산이 없어 쓰고 갔다가 새 주인이 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이 우산은 달랐다. D 시의 지하철역 우산꽂이에 꽂혀있는 평범한 비닐우산은, 역무원도 언제부터 있었는지 모르는 수수께끼의 우산이었다. 우산이 없을 때 사람들이 가져가기도 하고, 개중에는 우산을 다시 갖다놓는 사람들도 있었다. 우산을 갖다두러 다시 역으로 오는 사람들은, '우산이 자신을 이 곳으로 이끌었다'고 했다. 자신을 제자리에 갖다두기를 바라는 듯 했다고. 그 우산을 가져다주지 않은 사람들은 사고로 명계행 티켓을 차고, 명계의 일원이 되었..
-부우웅 -끼이익, 쿵 굉음이 들리더니, 오토바이 한 대가 넘어져서 도로 이 쪽에서부터 저 쪽까지 끌려갔다. 무리해서 운전하려던 오토바이가 사거리에서 신호에 맞춰 달려오던 차를 피하려고 핸들을 꺾다가 생긴 일이었다. 사거리 모퉁이 한쪽에서 다른 한쪽으로 굉음을 내며 끌려간 오토바이는, 신호등 기둥에 부딪힌 후에야 겨우 멈췄다. "이, 이게 어떻게 된... " "직접 보는 건 별로 추천하고 싶지 않아. 되게 처참하게 죽었거든, 너. " "죽...어? 내가? " "너, 지금 내가 보이지? 난 널 데리러 온 저승사자야. " 멀뚱히 서 있는 그에게, 온 몸에 붕대를 휘감은 여자가 다가와 하얀 티켓을 감았다. 흡사 놀이동산 자유이용권이나 클럽에 입장할 때 감는 종이 티켓같이 생긴 그것은, 종이로 만든 것 같았지만..
아침부터, 30대 후반쯤 되어 보이는 남자가 컴퓨터 본체 하나를 들고 괴담수사대를 찾아왔다. 그는 사무실에 도착하자마자 테이블에 본체를 내려놓고, 오른쪽 어꺠를 두어번 주물러준 다음 어제 연락했던 사람이라며 자신을 소개했다. "아, 그 T 바이오에서 오신다는 분이시군요. 상황은 직원을 통해서 전해들었습니다. 이게 그 컴퓨터인가요? " 컴퓨터는 어디에나 있을법한 검정색 데스크탑이었다. 사무실에 남는 모니터와 키보드, 마우스를 연결하고 부팅해보니 이렇다 할 것 없이 평범한 사무용 PC였다. 마치 포맷하고 새로 세팅이라도 해 둔 것처럼, PC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냥 일할 때 필요할법한 프로그램 몇 가지가 사내 메신저와 함께 깔려있었다. 랜선을 연결해봐도 별다른 징후는 보이지 않았다. "일단 보기에는 평..
게시자: 미스테리어스 제목: [투고괴담] 기묘한 PC 구독자 'mars0513'님께서 투고해주신 이야기입니다. 안녕하세요. 미스테리어스의 괴담집을 재미있게 보고 있습니다. 오늘도 새로 올라온 이야기를 보다가, 문득 전 직장에서 겪었던 일이 떠올라 이렇게 투고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연구실에서 일하고 있는 연구원입니다. 그리고 이번 이야기는 전 직장인 T 바이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전 직장은 소위 말하는 블랙기업이었습니다. 왜 그런 회사들 있잖아요, 공고만 봤을때는 번듯한 직장같아보였지만 막상 들어가서 보면 아닌 곳. 전 직장도 딱 그런 곳이었습니다. 어떻게든 월급은 안 주면서 사람들은 있는대로 쥐어짜는... 그렇다보니 사람들은 항상 지쳐 있었죠. 책상에는 에너지 음료 캔이 한가득이었고, 간식도 금방 없어..
파이로와 미기야, 현, 그리고 라우드는 의뢰를 받고 D 대학교에 있는 한 실험실로 갔다. 실험실은 제법 넓어보였고, 실험실 안쪽에 교수의 오피스가 있는 공간이었다. 실험실 가장 안쪽에는 학생들이 노트 정리를 하고 논문을 읽을 수 있는 책상이 네 개, 책상 위에 컴퓨터가 네 대 보였고 오피스 쪽에는 연구용 장비가 있었다. 실험대에는 각종 시약들과 실험 도구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실례합니다, 괴담수사대에서 나왔는데요. " "어서오세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 실험실을 들어서면서부터, 흡사 아이가 사망한 장례식장에서나 느낄 수 있을법한 묵직한 공기가 느껴졌다. 실험실 문을 경계로 누군가 칼로 자른것처럼 그 경계가 나뉜 듯 했다. 인터넷에서 봤던 서로 다른 두 바다가 만나 다른 색의 물이 반반인 곳이 이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