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계의 법정은 매일 쏟아져 나오는 망자들로 정신이 없었다. 그것은 망자들의 죄를 심판하는 법관들의 입장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라, 재판을 받는 망자들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음? ” 열차가 막 도착하고, 자료를 받은 데메테르는 미간을 찌푸렸다. 아직 갓 스무살인 여자였지만 죄목에 낙태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낙태가 죄목에 있는 경우는 꽤 있었지만, 이번에 들어온 망자는 낙태라는 죄목을 달고 들어오기에는 너무 어렸던데다가, 삼신당에서 재판이 끝나면 그 여자를 잠시 맡겠다는 연락이 와 있어 의아했다. “다음, 1768번 들어오세요. ” 대기실에서 기다리던 어린 여자가 재판정으로 들어서자, 열두명의 재판관들이 보였다. 저마다 서류를 넘겨보던 재판관 중 대다수는 판결을 패스했고, 아프로디테와 헤라는 오히려 ..
“실례합니다. ”늦은 토요일 오후, 젊어보이는 남자가 괴담수사대를 찾았다. “어섭쇼. ”하필 쉬는 날 찾아오냐, 파이로는 툴툴거리면서도 남자를 테이블에 앉게 한 다음 음료수를 내 왔다. 그리고 맞은 편에 앉으려던 파이로는 어디선가 들려오는 울음소리를 들었다. 서럽게 우는 여자의 울음소리 중간중간 아이의 웃음소리도 섞여서 들려오고 있었다. “음…? ”“왜 그래? ”“어디서 우는 소리 안 들리냐? 애가 웃는 소리도 들렸어. ”“분명히 들었어. ”울음소리가 들렸다는 말에, 남자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여기까지 따라오다니… ”“뭔지는 모르겠지만 독한 게 붙었군. 어떻게 된 거야? 얼마나 이런걸 달고 살아온거야? ”울음소리의 정체는 남자의 전 여자친구였다. 첫사랑이었지만, 헤어진지는 꽤 오래됐고 그의 주변에서..
괴담수사대는 살인사건 현장에 와 있었다. 보통 살인사건이 일어나 현장으로 출동해보면, 현장에는 범인이 아무리 깨끗하게 정리하려고 해도 피가 튀어 있었고, 과학 수사를 진행한 흔적과 함께 피해자가 쓰러진 곳에 하얀 선이 그려져 있는 게 보통이었지만 이번 사건 현장은 달랐다. 사건 현장에 있는 피해자의 몸에 피가 한 방울도 남아있지 않았다. 추파카브라나 흡혈귀라도 왔다 간 건지 온 몸에 피란 피는 한 방울도 남김없이 사라져 있었고 그 외에 겉으로는 피해자를 죽일 때 저항한 흔적과 목 옆부분에 칼로 찌른 흔적 말고 별도로 시신이 손상된 흔적은 없었다. 몇 번 똑같은 현장에 출동한 태훈의 얘기에 따르면, 요즘들어 이 주변에서 일어나는 살인사건이 다 이렇다고 한다. “흡혈귀에 물리기라도 한 건가… ” “요즘 세상..
"어서 오세요, 엘 푸르가토입니다. " "칵테일 하나 부탁해, 논 알콜로. " 늦은 저녁, 엘 푸르가토에 정장을 입은 여성이 성큼성큼 들어섰다. 여성이 카운터에 앉아 칵테일을 주문하자, 마스터는 금세 블루 하와이 한 잔을 만들어 여성의 앞에 내놓았다. "뭐 좀 물을 게 있는데 말이지. " "저한테요? " "얼마 전에 암으로 세상을 떠난 프로게이머, 기억하지? " 얼마 전에 암으로 세상을 떠난 프로게이머가 있었다. 프로 팀에 입단해서 페이커와 만나고 싶다는 꿈을 이뤘으나, 그 뒤 갑작스럽게 갑상선암에 걸려 젊은 생을 마감하고 만 그를 데리러 갔던 것이 정장 차림의 여성이었다. "아무리 계약의 대가라고는 해도, 아무리 그 학생이 재능이 없었다고는 해도 이건 너무하지 않아? 그래도 나름대로 순수한 꿈을 갖고 ..
게시자: 미스테리어스 제목: [투고괴담] 딱지 구독자 ‘삥빵뿡뽕’님께서 투고하신 글입니다. 안녕하세요, 미스테리어스의 블로그 글 잘 읽고 있습니다. 평소에는 보기만 했는데, 저도 이 블로그에 글을 투고할 일이 생길 줄은 몰랐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곳은 경기도 A시의 아파트 단지입니다. 아파트는 지은 지 오래 되어서 아마 아파트명을 말하면 몇 명은 ‘아, 그 아파트?’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국회의원도 몇 분 살고 계시고, A시의 주차빌런을 고발하는 네튜버 하나도 여기 살고 있습니다. 왜 그 재력으로 여기서 사는건지 모르겠는 분들도 있고, 유명인들도 몇 명 있긴 하지만 본 적은 없습니다. 아파트에는 주차장이 지상, 지하 두 군데가 있습니다. 그리고 주차장에는 몸이 불편하신 분들을 위한 주차공간이 따로 마..
"아유, 영수 엄마, 그러지 말고 들어와. " "하지만... " 11월의 어느 오후, 두 중년 여성이 쇼콜라타의 문을 열었다. 유리문에 달린 종이 맑게 딸랑, 하며 울리자 안에서 갓 만든 초콜렛을 들고 쇼콜라티에가 나와 두 여성을 맞았다. "어서오세요, 쇼콜라타입니다. " "여기, 내일 아들이 수능을 보는데... 수능날 먹을 수 있게 초콜렛 다섯 개 묶음으로 된 것도 있나요? " "안그래도 곧 수능이라 초콜렛을 찾는 분이 많아서 몇 개 만들어뒀어요. 이 쪽 매대에 있는 걸로 한번 둘러보세요. " 잘은 모르지만, SNS에서 한창 유명하던 쇼콜라티에의 작품이라 그런지 초콜렛의 가격은 눈이 튀어나오도록 비쌌다. 하지만, 충분히 그 가격 이상의 가치를 할 것 같은 생김새였다. 연필 모양의 초콜렛은 나무 부분과 ..
엘 푸르가토에 두 명의 여자가 들어왔다. 한명은 굉장히 침울해보였고, 한명은 그런 한 명을 달래주고 있었다. 칵테일을 마시자, 술기운에 울음이 터진 여자는 ‘이게 도대체 몇 번째냐’면서 울고 있었다. “야… 진정해… 여기 다른 손님들도 있잖아… ” “그치만… 그치만… 흐어엉… 대체 이번이 몇 번째냐고… 그놈 또 나 몰래 소개팅 하다가 걸렸어… 으앙-” “아, 알겠어, 알겠으니까 진정해, 여기 다른 손님들도 계시잖아… ” 어찌나 서럽게 울고 있었는지, 그녀의 울음소리가 바 안에서 술을 마시던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그런 그녀를 어떻게든 달래보려고 했지만 술기운 탓인지, 서러움 탓인지 그녀는 더욱더 서럽게 울고 있었다. “젊은 아가씨가 무슨 일로 서럽게 울고 있어? ” “죄송합니다… 얘가 취했나봐요… ” ..
1. 20XX/3/21 21:00:04 ID: n9XYyOK4LM 우리 누나한테는 뭔가가 붙어있는데, 그것 덕분에 특출나게 운이 좋아졌다거나 한 건 아니지만 나쁜 일은 안 당해. 2. 20XX/3/21 21:02:10 ID: SQa1ScVO5y 1>> 뭐 신이라도 붙어있는거임? 3. 20XX/3/21 21:07:13 ID: n9XYyOK4LM 2>> 신은 아니고 동물. 할머니댁은 농사를 지으셔서 밭이 엄청 넓어. 우리도 여름방학때 내려가서 도와주곤 했고... 근데 할머니댁 밭이 산이랑 가까워서 뱀이나 고라니같은 동물들이 많이 나오거든. 하루는 밭일을 하던 누나가 뭔가를 들고 밭을 나가길래 봤는데, 뱀이 죽어있었어. 생긴걸로 봐서는 아마 살무사인 듯 했는데, 누나는 뱀을 좋아해서 그런가 아무렇지도 않게 들..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가도록 두 남학생이 운동장을 돌고 있었다. 한 학생은 체력을 단련하려고, 그리고 다른 학생은 벌로 운동장을 연거푸 돌고 있었다. 연신 가쁜 숨을 몰아쉬며 텅 빈 운동장을 달린 두 남학생은, 달리기를 멈추고 숨을 고르고 있었다. "아, 짜증나... " "뭐냐, 재호. 담배라도 걸렸어? " "미쳤어? 프로 선수가 되려면 그런 건 멀리 해야 한다고. " "그럼 왜 운동장을 달린거야? " "국어 점수가 평균 미만이라고 운동장 뛰랜다... 다른 애들은 앉았다 일어서기 100번 했는데, 나는 축구부니까 평균보다 점수 차이가 많이 나는 만큼 운동장 뛰는걸로 퉁친다고. " "저런... " 운동장 달리기를 마친 두 사람은 학원으로 가고 있었다. 학교뿐 아니라 학원도 같은데다가, 같은 축구부이기까지 했..
시계가 새벽 한 시를 가리킬 무렵이었다. 공장 근무가 새벽에 끝난 모양인지, 세 명의 아줌마들이 엘 푸르가토에 들어섰다. “어서 오세요~ ” “늘 먹던 걸로 부탁해요. 언니는 뭐 마실래? ” “내일도 출근해야 해서, 술은 좀... ” “여기 술 빼고도 만들어주니까 하나 골라봐. ” 고된 일을 마치고 마시는 칵테일이야말로, 사막에서 찾은 오아시스에 비견될 정도로 달다. “언니는 내일 아침에도 출근해? 너무 무리하는 거 아냐? ” “나도 좀 쉬고 싶지... 그런데 딸내미가 또 한 건 했어... ” “...... ” 또 사고를 쳤다는 말에, 다른 아줌마들은 잠시 숙연해졌다. “걔도 내일모레면 서른인데, 언제쯤 철이 들려나... ” “이번에는 또 무슨 일인데 그래? ” “고소장이 날아왔어. ” “고소장? ” “..
늦은 저녁, 엘 푸르가토에 한 무리의 남학생들이 찾아왔다. 갓 대학 1년을 마치고 방학도 했겠다, 대학 친구들끼리 조촐하게 종강 파티를 하러 온 듯 했다. 자리를 잡고 앉은 남학생 무리는 칵테일을 사람 수에 맞춰서 시키고, 나눠 먹을 안주도 함께 주문했다. "우리도 이제 2학년이 되는구나. " "그러게. " "2학년은 무슨, 인제 군대 가야지. " "암울하게 왜 그러냐... 오늘만큼은 군대 얘기 꺼내지 말자. " 남학생 무리 중 몇 명은 벌써 입대 날짜를 받은 모양이었다. 개중에는 여자친구가 있는 사람도 있었고, 여자친구와 입대 전 정리한 사람도 있었고, 여자친구가 없는 사람도 있었다. 그렇게 저마다의 칵테일을 마시면서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지만, 한 명은 유난히 암울해보였다. "저 친구는 어디 아픈 거..
늦은 저녁, '엘 푸르가토'로 두 여성이 찾아왔다. 칵테일을 각자 두 잔씩 시킨 다음, 서로의 칵테일을 마시며 두 사람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꽤 재미있는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 같은데, 나도 끼어도 될까? " 마침 바에 손님은 두 사람이 다였던지라, 처음에는 손님들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만 있던 마스터는 두 사람의 이야기에 흥미가 동했는지 얼음물을 가져와 함께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두 사람은 한 사람을 동시에 짝사랑하고 있었지만, 한쪽은 자신이 있어보였고 다른 한쪽은 다소 자신이 없어보이는 듯 했다. "호오, 이거 꽤나 흥미로운걸. 두 사람, 취향이 비슷한 모양이네. " "네, 대학교 OT에서 처음 만났을때도 여러가지로 공통분모가 있어서 친해졌어요. " "그렇군... 그렇다면 어느 ..
"여기는 미성년자 출입 금지야. " 이 곳은 후미진 골목 한켠에 있는 작은 바 '엘 푸르가토'였다. 막 바를 열고 장사를 준비하던 마스터는, 고등학생쯤 되어 보이는 남학생이 바 입구 앞에 서 있는 것을 발견했다. 남학생은 바를 열고 장사를 준비하려던 마스터를 보고 머뭇거리고 있었다. "저, 이걸 받았는데... " 남학생이 내민 것은 티켓이었다. 학생은 폐지를 실은 손수레를 끌고 가는 할머니를 도와줬더니 여기로 가면 고민을 해결해 줄 거라면서, 티켓을 주었다고 했다. 마스터는 학생이 내민 티켓을 보고 입구를 대충 정리한 다음 학생을 안으로 들어오게 했다. "뭐, 어쩔 수 없나... 안으로 들어와. " 학생은 한 눈에 보기에도 술과는 거리가 멀어보이는 인상이었다. 오히려 반에서 1~2등을 다툴 정도로 성적이..
1: 20XX/1/5 21:00:01 ID: w116k5CYr2 주변에서 들었거나 직접 겪어본 기묘한 경험 이야기 해보자. 일단 나부터. 집 담벼락에 작은 개구멍같은 게 있는데, 거기로 길고양이들이 종종 들어옴. 그 중에서도 유독 몸이 약했던 한마리를 키키라고 부르면서 집에서 길렀었는데, 얼마 전에 노환으로 죽었어. 그래서 정원 한쪽에 무덤도 직접 만들어줬고. 내 위로 누나가 둘 있는데, 큰누나에게는 결혼하기 직전에 파혼한 남자친구가 있었어. 근데 파혼하게 된 계기가 키키때문이었대. 키키가 꿈 속에 나와서 반가워했는데, 사람 말로 '그 남자는 누나를 상처입힐거야, 안 돼. '라고 하더나 갔대. 유난히 큰누나를 좋아하던 키키가 애교도 안 부리고, 오히려 하악질을 하면서 그러는데 처음에는 별 이상한 꿈이 다..
1: 20XX/12/18 22:00:01 ID: QWRVCMUe8V 주변에서 들었거나 직접 겪어본 기묘한 물건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일단 나부터. 왜 걱정인형 이라고, 잠들기 전에 걱정거리를 얘기하고 자면 인형이 대신 걱정해준다고 하잖음? 그런 게 우리 집에도 있어. 아버지 친구분이 결혼 선물이라고 과테말라에 출장갔다가 사오신건데, 현지인들이 만든 물건이라서 그런 건지 되게 영험한 물건이었음. 지금은 힘이 다했는지 보통 인형이지만... 나는 예정일보다 좀 일찍 나와서 인큐베이터에서 지냈는데, 그 때 어머니가 걱정인형에게 처음으로 내가 건강한 아이로 자랐으면 좋겠다고 소원을 빌었더니 이루어졌어. 그래서 지금은 잔병치레 하나 없이 건강함. 그러다가 내가 여덟살이 되었을 때, 아버지 회사가 급격하게 기울어서 ..
그녀는 낡은 폐건물 옥상에 서 있었다. “하아... ” 휘갈겨 적은 유서를 내려놓고 옥상으로 올라왔지만, 그녀는 망설이고 있었다. 스토킹으로 고통받고 있었고, 너무 힘겨워서 죽으면 끝날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런 이유로 스스로 생을 마감할 수는 없었다. “그래, 여기서 떨어지면... 더 이상 그 사람에게 시달리지 않아도 돼... ” 마침내 결심이 섰는지 그녀는 떨어지려고 했지만, 떨어질 수 없었다. 몸을 그대로 얼려놓은것처럼,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녀의 뒤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 ” “생명은 소중히 해야 하는거예요. ” 폐건물이라, 이 시간에 일부러 찾아올 만한 사람은 없었다. 아니, 애초에 그녀를 붙잡고 있는 그것을 사람이라고 해야 할 지 모르겠다. 얼핏 보기에는 사람같았..
ID: 아방가르드레싱 우리 집에는 전해져 내려오는 저주가 있어서, 그 집안의 첫째는 불임이거나 불임이 아니라면 30세가 되는 나이에 죽어. 사인은 제각각인데, 죽는 날은 30세가 되는 해의 생일 하루 전이야. 우리 아버지도 그래서 위에 형이 있었는데 30살에 아들 하나 남기고 죽었다고 했고, 큰아버지의 아들도 작년에 사고로 생일을 하루 남기고 죽었어. ID: 감자칩고구마칩 @아방가르드레싱 너네 집은 괜찮은거? ID: 아방가르드레싱 @감자칩고구마칩 아빠한테 듣기로는, 그 저주는 처음 태어나는 아들에게만 전해지는거라 차남 이하는 괜찮다고 했음. ID: 감자칩고구마칩 @아방가르드레싱 그럼 장녀가 태어나면 장녀의 아들도 30살이 되는 해 생일 전날 죽는거임? ID: 아방가르드레싱 @감자칩고구마칩 ㅇㅇ. 아니면 ..
게시자: 미스테리어스 제목: [투고괴담] 주인을 스스로 정하는 건물 구독자 ‘부릅뜨니숲이었어’님께서 투고해주신 이야기입니다. 오늘은 저와 엄마가 갖게 된 건물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엄마는 환갑이 넘은 나이에 하시던 일을 내려놓고, 소일거리로 독거노인을 찾아가서 말동무도 해 드리고, 도시락도 배달하는 봉사활동을 하고 계십니다. 물론 지금도 봉사활동을 하고 계시고요. 저희가 건물을 받게 된 것은, 엄마가 봉사활동에서 만난 할머니가 그 건물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지금 그 할머니는 돌아가시고 없지만, 돌아가시기 전에 엄마와 함께 변호사를 찾아가서 건물 증여에 대한 마무리를 하고 증여세까지 손수 내주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남은 돈은 할머니의 뜻에 따라 엄마가 봉사하고 있는 단체에 기부하셨다고 합니다. 할머..
사무실에 출근한 미기야를 맞은 것은, 금색 가면을 쓴 남자였다. 그는 미기야를 보자마자 대뜸 자신을 아웃사이더라고 소개하면서 괴담수사대의 도움이 필요한 일이 있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괴담수사대의 도움이 필요하다고요? " "말 그대로야. 이 일은 우리가 단독으로 해결할 문제가 아냐. " "거 무슨 일인지 자초지종이나 듣고 판단합시다. 얘 아까 막 출근했거든. " "그렇지, 일단 자초지종을 설명해주는 게 먼저겠지... " 아웃사이더와 미기야, 파이로는 테이블에 앉았다. "무슨 일로 아침 댓바람부터 예까지 찾아오셨수? " "이번에 의뢰를 받은 사람이 쫓기고 있거든. " "저희는 경호쪽 일을 하는 곳이 아닙니다만... " "사람에게 쫓기고 있는거라면 우리쪽에서 어떻게든 했겠지. 의뢰인을 쫓고 있는 게 사람이 ..
임무차 다른 곳에 갔던 태형은 차를 몰고 다리를 건너는 중이었다. “밤에 보는 한강은, 그 나름대로의 멋이 있지. ” 캄캄한 하늘에 보이는 건물의 실루엣과 별을 박아둔 것처럼 수놓은 불빛들, 그리고 간판의 네온사인이 선명하게 보인다. 한강물의 물결이 반짝이면서 흐르는 것이 간간이 보였다. “앗, 아저씨! 저기! ” “응? ” 미래가 가리킨 곳에는 사람이 한 명 서 있었다. 멀어서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뭔가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낀 태형은 난간쪽에 차를 세우고 미래가 가리킨 곳으로 갔다. 미래가 가리킨 곳에 서 있었던 것은, 5~60대는 되어 보이는 중년의 여성이었다. 여성은 다 포기한듯한 눈으로 다리 아래를 보고 있었다. “부인, 무슨 일이라도 있으신가요? 안색이 좋지 않아 보입니다. ” “........
고키부리 사무실에 들어선 아웃사이더는, 테이블에 앉아있던 의뢰인을 발견했다. 이번 의뢰인은 꽤 젊어보이는 여자였다. "이 쪽인가? " "네. " "고키부리 사무실 통해서 얘기는 대충 들었는데... 회사는 그럼 어떻게 한 거야, 아예 그만 두고 나온거야? " "네. 그만두고 증거들 정리해서 터뜨리려고 준비중이었어요. " "우리 팀의 서비스는 그런 목적으로 이용하라고 있는 건 아니지만, 이번에는 어쨌든 너도 피해자고... 너도 모든 것을 잃을 각오를 했기 때문에 나를 찾아온거겠지. " 아웃사이더는 고키부리 사무실에서 넘겨받은 서류 뭉치를 읽었다. "뭐, 좋아. 이 정도면 의뢰는 받아주지. 우리 팀의 서비스는 확실하니까, 뒤탈 없이 네 신분을 완벽하게 바꿔줄 수 있어. 대신 우리 팀의 서비스를 이용하게 되면 ..
아침부터 아웃사이더가 고키부리 사무실에 도착했을 때, 사무실에는 파이로와 도희가 있었다. 두 사람은 초등학생 정도는 되어보이는 남자아이 하나를 데리고 아웃사이더를 기다리고 있었던 듯 했다. "의뢰라는 게 이 쪽이야? 우리는 미성년자의 의뢰는 받지 않고 있는데... " "그건 익히 들어서 알고 있지만, 너도 사연을 들으면 그 규칙을 예외로 하게 될 거다. " "예외? 그보다 이 사람은 뭐야? 아니, 자세히 보니 사람이 아니잖아... " "이 분은 아래층 괴담수사대에서 일하는 파이로씨예요. 탐 반델에 대해서는 어느정도 알고 있긴 하지만, 저희도 믿을만한 분이기때문에 알려드린겁니다. " "괴담수사대라... 종종 활약하는 걸 듣긴 했지. 뭐, 그건 됐어. 도희씨가 우리에 대해 얘기했다는 건, 이쪽도 믿을만한 사..
이번에 팀 반델을 찾은 것은, 갓 20대는 되어 보이는 젊은 남자였다. 군대를 전역하고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모든 것을 끊을 각오로 팀 반델을 찾은 남자는, 고키부리 사무실을 통해 리더와 접촉할 수 있었다. 도희의 연락을 받은 남자는 일단 무슨 사연인지 들어나 볼 요량으로 사무실을 찾아왔다. “그래, 이번에는 또 어떤 사연을 안고 오셨나? ” “그러고보니, 저도 팀 반델에 의뢰를 하고 싶다는 얘기만 들었지 사연은 듣지 못했군요. ” “미리 알아보고 연락한 거 아니었어? ” “저희는 의뢰인이 얘기하기 전에는 조사를 하지 않으니까요. ” “프로다운 신념이군... 미리 얘기하는데, 네 사연에 따라서 우리 팀에서 의뢰를 받아주지 않을 수도 있어. 이건 염두해 두시고... 일단 앉아서 네 얘기나 좀 듣지. ” 금색..
시계는 오후 두 시경을 가리키고 있었고, 고키부리 사무실에 한 남자가 들어섰다. "안녕하세요, 오전에 연락드렸던... " "어서 오세요, 마침 저쪽에서도 왔습니다. " 도희가 남자를 소파로 안내하자, 소파에 앉아있던 금색 가면을 쓴 사람이 이 쪽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마치 고대 무덤의 부장품같은 느낌을 주는 가면은, 표면은 매끈하고 금색으로 칠해진 바탕 위에는 검은 선으로 이목구비 모양이 그려져 있었다. "이 쪽인가? 자, 일단 여기 앉으시고... " 남자가 소파에 앉자, 금색 가면을 쓴 사람은 소파에 기댔던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먼저 묻겠는데, 우리 팀의 서비스는 확실하니까, 뒤탈 없이 네 신분을 완벽하게 바꿔줄 수 있어. 대신 우리 팀의 서비스를 이용하게 되면 네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이 지워질거..
아침부터 젊은 여자가 고키부리 사무실로 들어섰다. “어서 오세요. 의뢰하실 일이라도? ” “아, 전에 상담 드렸었는데... 신분 세탁 건으로요. ” “어제 그 분 맞으시죠? 이 쪽에서 잠시만 기다리세요. 곧 리더가 올 겁니다. ” “아, 네... ” 젊은 여자를 맞은 도희는, 가죽 소파로 여자를 안내했다. 소파 한쪽에 가방을 올려놓은 여자가 잠시 기다리자, 사무실 문이 열리고 누군가가 들어왔다. “아침부터 고객이 왔다며? ” “방금 도착해서 기다리고 계세요. 이 쪽으로 오시면 됩니다. ” “아, 이 쪽인가보군. ” 젊은 여자와 마주앉아 있는 사람은, 금색 가면을 쓰고 있었다. 마치 고대 무덤에서 부장품으로 발견될 것 같은 느낌의 가면이었다. 넉넉한 옷을 입고 있어서 성별을 짐작할 수는 없었지만, 목소리로..
게시자: 미스테리어스 제목: [투고괴담] 이름 도둑 구독자 'dyoon2020'님께서 투고해주신 이야기입니다. 안녕하세요, 파리아 아일랜드에서 프로야구를 하고 있는 도윤입니다. 오늘은 제 이름에 얽힌 이야기를 하나 해볼까 합니다. 제 이름은 오래 전, 어머니가 용하다는 작명가에게서 받아왔다고 했습니다. 어머니는 두 번이나 이름을 받아와야 했는데, 첫 번째로 받아왔던 이름인 도민을 다른 친구가 먼저 훔쳐서 자기 아이의 이름으로 지었다고 합니다. 만나기 힘든 작명가였고, 제가 첫 아들이었던지라 누나들과 달리 복채에 웃돈까지 얹어주고 받아온 좋은 이름이었던지라, 어머니는 그 소식을 듣고 그 친구와 바로 연락을 끊었습니다. 그 다음, 그 작명가에게 찾아가니 그 작명가는 어째서인지 엄마가 제게 지어주려고 받아갔던..
그는 오랜만에 동창회에 나갔을 때, 깜짝 놀랐다. 만화를 좋아하는데다 키가 작고 뚱뚱해서 둔하다는 이유로 일진들이 괴롭혔던 동창이, 180도 바뀌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남자는 군대 가서도 키가 큰다더니, 그는 그보다 머리 하나는 더 커보였다. 거기다가 근육질에 탄탄한 몸매까지, 뭇 여성들의 시선을 잡아 끌 정도로 적당히 단단한 몸을 가지고 있어 이름을 말하기 전까지는 '우리 반에 이런 애가 있었나?' 싶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성형수술을 한 건지, 안경을 벗어서 그런지 꽤나 훈훈한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네가 진짜로 그 재원이라고? 오타쿠라고 애들이 놀리던? " "맞다니까, 인마. " 그의 변화된 외모가, 드라마틱한 걸 넘어서 아예 한번 다시 태어났다고 해도 믿을 수준이었다. 다른 사람들도 입이 떡 벌어..
「그들을 현혹시키던 그 악마도 불과 유황의 바다에 던져졌는데 그 곳은 그 짐승과 거짓 예언자가 있는 곳입니다. 거기에서 그들은 영원 무궁토록 밤낮으로 괴롭힘을 당할 것입니다. (요한의 묵시록 20:10)」 시트로넬의 가위에 찔려 의식을 잃었던 남자는, 어느 열차에서 눈을 떴다. 내부를 꽃으로 화려하게 장식한 열차 안에는 그 외에도 몇 명이 더 타고 있었다. ‘이상하다... 귀가 하나도 아프지 않아...? ’ 분명 붉은 달의 악마가 그의 귀를 문자 그대로 잡아 뜯어서 피를 잔뜩 흘렸었는데, 신기하게도 아프지 않았다. 귀가 있는 쪽을 다시 만져보니, 분명 뜯겼던 귀가 다시 붙어있었다. “눈을 뜨셨군요. 금방 안내 도와드릴테니,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 그리고 눈을 뜬 그의 앞에, 정장 차림의 남성이 나타났다..
「그리하여 그릇에 담긴 피를 잉크로 하여, 그대의 손을 붓으로 하여 마법진을 그리면 달의 악마가 강림할지니. 」 약속한 시간이 되자, 괴담수사대는 R 시에 있는 호수공원으로 향했다. “이런 곳은 보통 밤에 개방을 안 하지 않아? ” “야심한 시각에 개구멍 찾아서 들어가면 그만이잖아. ” “흠... 의식을 진행하려면 어쨌든 달이 떠야 하는거죠? 달이 머리 위에 뜰 때면... 꼭두새벽까지는 기다려야겠네요. ” “어차피 단죄자도 기다려야 하니까, 저녁이나 먹지. ” 간단하게 저녁을 먹으면서 기다리고 있으니, 시트로넬이 금방 도착했다. “엥? 너희들, 와도 되냐? 그 녀석, 인간 남자라면 한눈에 반해서 어떻게 될 지 모른다고. ” “부적이 있으니까 괜찮을겁니다. ” “!!” 시트로넬의 뒤에, 메피스토펠레스가 따..
「사람이 슬기로우면 좀처럼 화를 내지 않는다. 남의 허물을 덮어주면 영광이 돌아온다.- 잠언 19:11 쾌락에서 슬픔이 생기고, 쾌락에서 두려움이 생긴다. 쾌락에서 해탈할 수 있는 인간에게는 이미 슬픔도 두려움도 없다.- 석가모니」 일곱가지 죄를 지은 자를 제물로 삼는다면, 앞으로 두 명이 더 실종될 것이다. 그리고 아직 시신으로 발견되지 못 한 사람들도 두 명 남아있었고, 그들도 어딘가 한 곳이 잘린 채 발견될 것이다. 그러던 와중, 괴담수사대는 살인사건 현장에 가게 되었다. “실종사건도 골치아파 죽겠는데 살인사건이 추가됐구만... ” “이게 어떻게 된 건가요? ” “저희도 방금 와서 뭐가 뭔지 모르겠습니다. 문 앞에 피가 흘러나와서 이상하게 생각한 이웃집 주민이 신고를 했고, 도착해보니 이 상황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