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전에 연락드렸던 사람인데... " 아침부터 젊은 여자가 사무실을 찾았다. 20대 중후반쯤 되어보이는 여자는 어깨까지 오는 머리를 반묶음으로 묶었고, 연한 노란색 카디건을 입고 있었다. 사무실에 들어오자마자 인사를 건네는 그녀는, 한 손에 꽃다발을 들고 있었다. "아, 어제 연락하셨던 분이군요. 이 쪽으로 앉으세요. " 현은 여자를 테이블로 안내하고 꽃다발을 건네받았다. 꽃다발에는 하얀 튤립과 분홍빛 프리지어 한 송이가 포장되어있었고, 하얀 포장지와 분홍 포장지로 감싼 꽃은 하얀 리본으로 묶여있었다. 얼핏 보기에는 결혼식 부케로 나올법한 꽃다발이었지만, 어딘가 꺼림칙한 느낌이 들었다. 젊은 여자가 테이블에 앉아 잠시 기다리니, 사무실을 정리하던 미기야가 나왔다. 그는 젊은 여자를 반갑게 ..
미기야와 현, 키츠네는 의뢰 건으로 먼저 일본으로 출국했고, 비행기 좌석이 모자라 분할로 예매한 바람에 파이로와 데스 애더는 라우드와 함께 몇 시간정도 늦게 가게 되어 사무실을 지키고 있었다. 그리고 그 때, 사무실의 문이 열리고 한 쌍의 남녀가 들어왔다. 제법 젊은 티가 나는 커플룩을 입은 남녀였다. "여기가 괴담수사대죠? " "그렇다만. " "맞게 찾아온 것 같은데...? " "용건이 뭐냐? " "저, 이것때문에요... " 남자는 품에서 작은 상자 하나를 꺼냈다. 상자 속에 든 것은 스노우볼이었다. 테니스공만한 크기의 구체에 액체가 가득 채워져 있었고, 반짝이는 글리터가 있었다. 스노우볼을 위아래로 흔들면 글리터도 위로 올라갔다가 눈처럼 사르르 흘러내렸다. 스노우볼 바닥에 어항처럼 꾸며놓은 장식이 있..
집을 나간 뒤로 가끔 메일로만 연락을 주고받던 유타로에게서 의뢰 겸 연락이 왔기 때문에, 미기야는 현과 키츠네와 함께 일본에 도착했다. 셋이 비행기를 타고 간사이 공항을 도착했을 때는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무렵이었다. “교토 도착인가… “ “그런 듯 하네요. 해가 꽤 떨어졌는데, 일단 숙소부터 알아볼까요? “ “네. 일단 형에게 연락부터 하겠습니다. “ 미기야가 유타로에게 전화해 간사이 공항에 도착했다고 하자, 유타로는 거기서 여기까지 가려면 시간이 걸리니 오늘은 하루정도 근처 숙소에서 묵고, 내일 아침에 데리러 가겠다고 했다. 전화를 끊은 미기야는 현과 키츠네를 데리고 공항 근처에서 적당한 호텔을 잡았고, 여행의 노곤함탓인지 도착하자마자 간단히 샤워만 하고 바로 잠들었다. 다음날 아침, 괴담수사대가 체..
제목: 겐소사마 전설 ID: 라떼는말이다 게시일: 20XX.11.XX 대학생때는 동아리 활동을 했었는데, 동아리에 좀 별로인 애가 한 명 있었어. 그 애는 도끼병이라도 걸린건지 모든 사람들이 다 자신을 좋아하고, 자기가 세상에서 제일 예쁘다고 생각하고 있었지. 사실은 모죠인데다가 뚱녀에 추녀였지만, 걔는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 자기가 제일 예쁜 줄 알았어. 편의상 걔를 A코라고 할게. A코는 항상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꽉 차 있었어. 항상 자기가 너무 에뻐서 탈이다, 나는 이 대학교의 여신이다 이런 말들을 입버릇처럼 했지. 거기서 그치지 않고 동아리방의 모든 남자 회원들에게 추파를 던져. 그 중 한명이 B오였는데 이 녀석은 누가 봐도 잘 생겼어. 기무라 타쿠야를 닮은 얼굴때문에 동아리 홍보역도 많이 ..
ID: 어육장향/작성일: 20XX.10.XX 23:00 술도 들어갔고, 마침 딱 떠오른 이야기도 있으니 써볼까 합니다. ID: 도키도키/작성일: 20XX.10.XX 23:00 뭔데? ID: 닌니쿠니쿠/작성일: 20XX.10.XX 23:01 오오 뭔데 뭔데? 나 궁금함. ID: 어육장향/작성일: 20XX.10.XX 23:03 오래 전, 여행을 갔을 때 일입니다. 남자친구와 친구 커플과 함께 온천 여행을 갔는데, 그 근처에 있는 신사가 풍경이 아름답다고 해서 들렀던 적이 있었습니다. 편의상 남자친구를 K오, 친구를 A코라고 하고, 친구의 남자친구는 B군이라고 하겠습니다. ID: 시리우스맨/작성일: 20XX.10.XX 23:03 오, 무서운 이야기 냄새! 가을과는 안 어울리지만 언제든 OK! ID:어육장향/작..
K 기업은 반도체 업계에서도 1위를 달리며, 반도체 뿐 아니라 스크린 기술도 뛰어나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핸드폰 기업인 C사에서 K 기업의 액정을 공급받아 기기를 출시할 정도였다. 과학상상화 같은 곳에서 보던, 마치 두루마리를 말듯 둘둘 말 수 있는 스크린이나 접을 수 있는 스크린은 물론 동전보다도 얇은 TV가 출시될 정도였다. 규모도 굉장히 큰 대기업이고, 위상도 어마어마하다보니 반도체를 전공하는 수많은 학생들 사이에서는 선망의 대상이었고, 교수님들도 전 학기 A0 이상을 받은 학생이나 대학원을 수료한 학생들은 이 곳에 원서를 쓰도록 추천해주기도 했다. 하지만 막상 들어가보면 밖에서 알려진 것과는 다른 무언가가 있었다. 다른 부서와 달리, 연구실에서 사내정치를 일삼는 김 부장때문에 아랫사람들은 죽어나갈 ..
여기는 대학가의 어느 술집. 술집 특유의 어둑어둑하면서도 밝은 조명 아래, 아직 손님이 없을 시간임에도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린다. D대학 전자공학과의 신입생 환영회 겸 개강총회였다. 아르바이트생은 테이블에서 주문한 술잔과 술, 안주를 가져다주고, 테이블에서는 술과 안주를 받아 잔을 돌린다. 그렇게 왁자지껄하던 사이, 한 사람이 더 들어왔다. 공대생들의 패션이라며 우스갯소리가 도는 체크무늬 셔츠에 청바지, 그리고 검정 백팩을 멘 남자였다. "현진이 왔어? " "현진 선배 오셨습니까? " "말 편히 해. " 신입생들과 얘기를 나누던 여자 한 명이 신입생들에게 체크무늬 셔츠를 입은 남자를 소개했다. 전자공학과 15학번, 최현진 선배라며. 현진은 신입생들에게 인사를 건네고 빈 자리에 앉았다. 술집은 신입생 환영..
"그 사람... 그 집안이 어떻게 되든 상관 없어요. 다시는 저나 제 아이 주변에, 그리고 우리 친정에 찾아오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어요. " "직장, 아이 어린이집을 포함한 당신과 관련된 어떠한 곳에도 찾아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 말씀이시죠? 그것도 일가족 전원? " "네. 그거면 됩니다. " 고키부리 사무실로 찾아온 여자는 꽤 젊어보였다. 젊어보이는 외양과 달리 이혼녀에 아이가 하나 있는 그녀는, 단정하면서도 편안한 복장을 입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눈은 무언가 불안해보였다. "그런데... 굳이 남편 뿐 아니라 일가족까지 찾아오지 못 하게 할 일이 있나요? 당신 뿐 아니라 아이까지... " "네...? 그게 무슨... " "보통 남편의 폭력성이나 바람기떄문에 헤어진 사람들은 남편 본인만을 뗴어놓..
"뭐야, 여긴 어디야? " 분명 나는 친구녀석과 훔친 차를 타고 신나게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도로를 달리면서 거나하게 술도 한잔씩 하고, 아무도 없는 새벽 도로를 씽씽 내달리며 소리도 지르고... 그렇게 한참을 내달리다가 뭔가를 들이받은 것 같기도 하고, 눈앞이 흐려진 것 같기도 하고, 그 뒤 다시 눈을 떠 봤을 때는 낡은 건물 안이었다. 주변을 둘러봤지만, 사방이 캄캄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전화기는 사고를 당했을 때 망가졌는지 작동되지 않아서, 광원이라곤 하나도 없는 상황이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주변을 손으로 더듬어 보니 무언가가 잡혔다. 더듬어서 찾아보니 뭔가 누를 수 있는 부분이 있었고, 버튼을 누르자 밝아졌다. 그가 주운 것은 어릴 적 아버지와 캠핑을 갔을 때 몇 번 썼던 걸이형 랜..
그는 수업을 마치면 항상 여자친구가 입원한 병원으로 가곤 했다. "주연아, 나 왔어. " "...... " 대학을 졸업하고 공무원이 되기 위해 공부를 하던 그녀는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집으로 가던 길에 교통사고를 당했고, 부상이 심해 입원을 해야만 했다. 사고 차량의 운전자는 아직 잡히지 않았지만, 들리는 얘기로는 곧 잡힐 수도 있다고 했었다. 그리고 곧 잡힌 범인은 그녀의 남자친구였던 정석이었다. 그녀에게 있어서는 무지막지한 충격이었다. 너무나도 사랑한다고, 자신을 응원한다고 했던 사람이 자신을 이렇게 만든 범인이었다니. 그렇게 만들어놓고 태연하게 병문안까지 오다니. "당신이 여기가 어디라고 찾아와? " "...... " "미쳤어? 우리 누나를 이 꼴로 만들어놓고 여기가 어디라고 찾아오는건데? 어? 입이..
-이런, 이런... 급행열차의 손님이 여기 계셨군. 몸소 마중까지 나오게 하다니, 결례라고 생각 안 하나? 그 말을 끝으로 의식이 흐려지는 가 싶더니, 정신을 차려보면 달리는 열차였다. 마치 하얀 국화로 도배를 해 둔 것마냥 꾸며진 객실에는, 그녀 외에도 여러 사람이 있었다. 주위들 둘러보던 그녀가 몸을 일으키자, 어디선가 포마드로 머리를 깔끔하게 정리하고 정장을 입은 남자가 나타나 그녀를 맞았다. "어서오세요, 손님.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 "진화라고 합니다. 류진화요. " "류진화님... 알겠습니다. 어느정도 괜찮아지시면 다음 칸으로 가 보세요. 그 곳에 손님을 위한 옷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 "옷이요...? " 남자의 말대로 다음 칸으로 가자, 다음 칸에서 그녀를 맞은 남자는 그녀의 이름을 ..
그녀가 눈을 떴을 때, 사람들은 평소와 다름없는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어딘가, 그녀 혼자서 붕 떠 있는 느낌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는 빌딩 옥상에서 몸을 던져 스스로 목숨을 끊었기 때문이었다. 눈앞에 보이는 것은, 처참한 그녀의 시신을 사람들이 수습하는 것이었다. "이제 좀 알겠어? " "......? " 검은 양복을 입은 사람들이 보였다. 그리고 그 가운데, 어딘가 음침해보이는 여자가 그녀에게 다가와 팔목에 무언가를 채웠다. 반은 하얗고, 반은 검은 종이같은 것이었다. 놀이공원에 놀러가서 자유이용권을 사면 이렇게 손목에 채워줬던 것 같다. "이건... " "자, 넌 이미 죽었어. 그건 말 안 해도 알겠지, 심혜진씨? " "제 이름을 어떻게...? " "저승사자니까. 망자의 이름 정도는 ..
"저... 혹시, 사람도 찾아주나요? " "우리 고키부리 사무실은 최정예 인원들로 구성된 곳이니, 사람 찾는 거야 일도 아니죠. 하지만 이 곳은 원한이 없으면 의뢰를 할 수 없습니다. " "제발 부탁드립니다. 돈은 두 배로 드리겠습니다. 제 약혼자가 어느 날 갑자기 연락을 끊고 사라졌어요. 살던 집도 정리하고 번호도 바꿨습니다. 부탁드립니다. 저는 그녀를 찾고 싶습니다. 그녀를 아직 사랑한다고요... 그녀를 찾아내서 어째서 갑자기 사라졌던 것인 지 물어봐야겠습니다. " "당신이 찾고자 하는 사람의 이름이 뭐죠? " "이예슬입니다. " "이예슬... 이예슬이라...... " 도희는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는듯 했다. 이예슬이라. 며칠 전 마지막으로 도희를 찾아왔던 의뢰인이었다. 처음으로 찾아온 것은 한달쯤 전..
"제 아들을 이렇게 만든 사람도 같은 고통을 겪게 해 주세요. " 그것이 그의 첫마디였다. 그에게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들이 있었다. 키도 훤칠하고, 훈훈한 외모로 학교에서 인기가 많았던 아이. 항상 의대에 갈 것이라며, 그래서 꼭 의사가 되어서 아빠를 호강시켜준다던 아이. 그랬던 아들이 응급실에 실려갔다는 얘기를 들은 그는, 일을 하다 말고 황급히 응급실로 뛰어갔다. 응급실로 뛰어간 그가 본 것은, 처참히 망가진 아들의 얼굴이었다. 의사의 말로는 누군가 아들의 얼굴의 염산을 뿌렸다고 했다. 그것도 매우 진한 염산이었다. 얼굴이 망가져버린 아들은 한동안 병원 신세를 지어야만 했다. 아들을 이렇게 만든 범인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그의 얼굴에 염산을 뿌린 것은 같은 반 여학생이었기 때문이다..
"찬민씨, 혹시 태린씨랑 연락 돼요? " "아뇨, 저도 며칠째 연락이 닿질 않아서... " "그래요...? " 이 곳은 작은 회사였다. 사무실도 조촐하고 간판 하나 없는 회사였지만, 사람들도 친절하고 월급도 꽤 괜찮게 나오고 있었다. 정직원 밑으로는 아르바이트도 몇 명 있다고 들었지만, 아르바이트를 하는 사람은 한번도 본 적 없었다. 그래도 확실히 좋은 회사가 맞긴 하다. 정시에 출근하고, 정시에 퇴근도 할 수 있고. 저녁에는 다들 가족들과 시간 가지라고 점심에 회식하고, 탕비실에는 커피와 간식이 빵빵했다. 지금까지 이상할만한 것은 없었다. 옆 자리에서 일하던 직원이 며칠째 나오지 않기 전까지는 그랬다. 그의 옆자리에서 일하던 태린이 며칠째 나오지 않았지만, 첫 날에는 그저 어디 아픈 것이라고 생각했다...
오컬트 관련된 커뮤니티는 메이저하지 않지만, 꽤 존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커뮤니티를 통해 퍼진 소문 중에는 '검은 양을 만나는 법'이 있었다. 그것은 말 그대로, 강한 염원을 가지고 H산 근처의 폐병원으로 가서 병원 입구에서 어떤 주문을 외우는 것이었다. 성공하게 되면, 눈 앞에 검은 양이 나타나 소원을 들어준다는, 일종의 뜬소문이었다. "여기가 병원 입구지... " 소문의 병원 입구에, 한 남자가 도착했다. 대충 차려입고 나온 듯 후드에 청바지, 그리고 농구화를 신은 남자는 병원 입구에 도착한 것을 확인하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주변에 있는 것은 폐병원과 그 병원 주변에 빽빽하게 자라 햇빛을 가려버릴 정도가 된 나무들과 잡초였다. "풍요의 힘으로 당신의 어린 양을 보살피소서. " 남자는 주문을 외우고..
이른 아침, 행색이 남루해보이는 여자가 고키부리 사무실을 찾았다. 머리는 빗는다고 빗었지만 군데군데 잔머리가 삐져나와 있었고, 옷은 언제 산 것인지도 모를 정도로 낡아서 수선한 티가 났다. 그녀는 사무실에 들어서, 도희를 발견했다. 생각보다 나이가 제법 어려보였는지, 그녀는 도희를 보고 정말 저 사람이 해결사일까, 라는 생각을 했다. "당신이 고키부리씨군요. " "아아, 전에 사이트 통해서 상담하고 싶다고 하셨던 분이군요. 이 쪽에 앉으세요. " 도희는 테이블을 치우고 여자를 그 쪽에 앉게 했다. 여자가 자리에 앉자, 그녀는 시원한 물 두 잔을 가져와 하나는 그녀의 앞에, 하나는 자신의 앞에 놓았다. "무슨 일로 저희 사무실을 찾아오고 싶으셨는지요? " "고키부리씨는 뭐든지 가능한 해결사라고 하셨죠.....
"잘생긴 조교님 어디 가셨어요 ?" "장비 쓰는 것 때문에 잠깐 나가셨는데... 무슨 일로 찾아오셨어요? " "실험 노트 때문에 물어볼 게 있어서요. " 오래 전, 대학원생 하나가 자살했던 C 대학교의 어느 실험실. 그 뒤로 같은 과는 물론 같은 과 교수들 사이에서도 한창 화제였던 곳이었다. 죽은 학생을 비웃고 기만한 교수는, 가해자가 자신의 지인이라는 이유로 계속해서 품고 있었다. 결국, 죽은 자만 억울하게 된 것이었다. 하지만 그 때문인지, 대학원생을 구하는 것은 힘들어졌다. 그러던 와중에, 연구하는 분야에 관심이 있다며 새로 들어온 대학원생이 장현수였다. 실험실 고참도 그렇고, 그의 사수도 그렇고 오랜만에 새로 들어 온 사람이 반가웠고 이것저것 가르쳐 주고 싶었다. 수려한 외모로 학생들 사이에서도 ..
어떤 이에게는 사랑이 축복이다. 하지만 어떤 이에게는 불행이다. 사랑은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들만큼이나 다양한 얼굴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 여자가 수면제를 손바닥에 잔뜩 털었다. 그리고 입 안으로 가득 털어넣고 물을 마셨다. 이걸로 됐어. 나는 영원히 잠들거야. 그리고 더 이상 울지 않을거야. 그녀는 잠시 후, 병원에서 눈을 떴다. 눈을 떴을 때는 온통 까만 여자가 보였다. 여기가 지옥인건가, 그래. 난 지옥에 떨어진거야. 부모님보다 먼저 죽으면 불효라고 했던가... 아니, 자살하면 좋은 데 못 간다던가... 그녀는 체념한 듯 다시 눈을 감았다. "넌 아직 살아있어. " "...뭐라고요? " "넌 아직 살아있다고. " 온통 까만 여자는 그녀에게 아직 살아있다고 했다. "네 위장 속 약은 게워냈어. 도..
오래 전에 유명했던 사진 작가가 있었다. 찍는 작품마다 사람들의 찬사가 쏟아졌으며, 그의 작품을 교과서나 다른 책에 싣고 싶다는 문의도 왔었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그를 교수로 기용하고 싶다는 학교도 많았고, 그녀는 승승장구 할 것 같았다. 어디를 가든 그녀의 작품이 걸려 있었고, 어디를 가든 그녀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많았으며, 어디를 가든 그녀의 모델이 되고 싶다는 사람들이 있었다. 미국의 어느 유명한 배우 역시 화보를 찍는다면 그녀와 함께 작업하고 싶다고 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것도 과거의 영광이었다. 지금의 그녀는 어느 누구도 찾아주지 않았으니까. 어제부로 교수직에서도 물러났고, 그녀에게 남은 것은 이제 없다. 일생을 함께 해 온 카메라와 과거의 영광을 대변해 줄 트로피, 그리고 화보집 몇 권. ..
가끔 사람들은 누군가 내 대신 일을 해 줬으면 하고 바라곤 한다. 그리고 그 바람들이 모여 만들어진 괴이, 그것은 '치환자'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아~ 회사 가기 싫다... 누가 내 대신 일 좀 해주면 난 펑펑 놀텐데... " "아서라 아서. 지금 일하는 걸 감사히 생각해. 너, 치환자 얘기 못 들었어? " "치환자? " "그래. 그런 말 계속 하면, 치환자가 나타나서 니 대신 일을 해 주는거야. " "오, 그럼 좋은 거 아냐? " "거기서 끝이 아니야. 치환자가 너를 대신해 일을 하면 할 수록, 너는 네가 아니게 되는 거야. " "에이... 그런 게 어딨어. " 회사일이 힘들고 지쳐서, 그녀는 누군가 하루정도 자기 일을 대신 해 주길 바라고 있었다. 일이 너무 고되지만 아무도 덜어주지 않았다. ..
세간에 떠도는 이야기들 중, 정말 유명한 불륜 이야기가 하나 있었다. 여자는 유명한 배우였고, 남자는 유명한 가수였다. 두 사람은 결혼까지 한 사이였음에도 사랑에 빠졌고 결국 해서는 안 될 짓을 저질러버렸다. 그리고 그 결과, 두 사람은 원래의 배우자와 이혼했다. 이혼한 후, 두 사람의 앞에는 꽃길만이 놓여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두 사람의 앞에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꽃길이 아니었다. 두 사람의 뜨거운 밀애만큼이나 타오르던 불꽃이 그 길 전체를 태우는 듯 했다. 두 사람이 각각 배우와 가수로서 쌓아 온 명성 만큼이나 질타와 야유는 심했다. 두 사람은 그 길을 헤쳐 나가려고 했으나, 그러기에 그 불꽃은 너무나도 뜨거웠다.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타오르는 불꽃은 어떻게 해도 쉬이 꺼지질 않았다. 오히려 두..
미기야와 라우드는 사건 현장에 도착했다. 그 곳은 평범한 아파트였지만, 살인 사건이 일어난 장소였다.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두 사람이 사건을 담당하는 형사에게 들은 바에 의하면, 언니가 여동생을 죽였다고 한다. "아무리 둘이 다툰다지만 어떻게 언니가 여동생을 죽일 수가 있어요? " "...오빠를 사랑한다고 여동생이 부모를 죽인 일도 있었으니... 현실이 소설보다 더한 경우도 있죠. " "그렇긴 하지만... " "일단 라우드 씨, 영상부터 확인해주세요. " 라우드는 현장 근처에 있는 쓰레기봉투에 손을 얹고 눈을 감았다. 쓰레기봉투는 어디서나 볼 법한 평범한 쓰레기봉투였고 얼핏 봐서는 쓰레기통을 비우려다 만 것 같았다. 하지만 영상을 확인한 결과는 그게 아니었다. 언니가 쓰레기봉투를 가져 온 목적은 여동생을 ..
제목: 원숭이 손 ID: 초코감자 게시일: 20XX.7.14 저는 어릴 때 발레를 했었습니다. 발레 쪽으로 진학 할 생각은 없었기 때문에 저는 취미반으로 갔었고요. 학원에는 크게 취미반과 진학반으로 나뉘어 있었고, 취미반은 저와 비슷하게 발레는 하고 싶지만 예중, 예고로 진학은 하지 않는 아이들이었던 반면 진학반은 무용으로 예중, 예고를 진학하는 아이들이 속해 있는 곳이었습니다. 진학반에도 친구가 있었고, 취미반에도 친구가 있었던 저는 둘 다 같이 끝나는 금요일 오후가 되면 친구들과 함께 집으로 놀러 가 엄마가 해 주는 피자 토스트를 먹는 게 낙이었죠. 오늘 들려드릴 이야기는 저도 진학반에서 발레를 배우던 친구에게서 들은 이야기입니다. 취미반과 달리 당시 진학반은 제 또래의 아이들 뿐 아니라 중, 고등학..
아침부터 사람들은 엽기 살인마 이야기로 시끌시끌했다. 엽기 살인마라는 이명이 붙은 이유는 살해한 방식 때문이 아니라, 살해 동기때문에 붙었다. 그녀가 자신의 직계 가족을 살해한 이유는, 어느 누구도 변호할 수 없었다. 내로라 하는 로펌에서도 변호할 수 없을 것 같은, 그런 이유였다. 그리고 실제로, 변호인들은 그녀를 변호하길 거부했다. 그녀가 자신의 두 양친을 살해한 이유는 바로, 자신의 오빠와 이어지기 위해서였다. 물론 배다른 오빠가 아니라, 부모가 같은 친 남매였다. "이쯤 되면 짐승만도 못한 놈이라는 말은 쓰지도 못 하겠군. 인간만도 못 한 짐승이라고 하는 편이 나을 것 같지 않아? " "그도 그러하군. " "그 마물 놈은 차라리 양반이었지... 재미로 사람을 죽이는 녀석이긴 했지만. " 그리고 그..
어느 날, 사무실로 출근하던 미기야는 한 통의 메일을 받았다. 아이작이라는 아이디를 쓰는 사람에게서 온 메일은, 미국의 폐허가 된 저택에 있는 거울에 관한 이야기였다. 필라델피아에 있는 이 저택에서, 최근 두 명의 고등학생이 저택 안에 안치된 거울을 보고 죽었으며 폐허를 탐색하는 호러 스팟 전문 유튜버와 그 사촌동생 역시 그 집에 갔다가 사망했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아이작은 메일 말미에, 호러 스팟 전문 유튜버가 촬영한 영상의 URL 역시 적어서 보냈다. "뭐? 미국? 또 거길 가야 한다고? 입국할 때 검열이 더럽게 깐깐해서 싫은데... " "그래도 안 가고는 못 배기실 거 같은데요? 이것 좀 보세요. " "뭐야, 이게? " 파이로 역시 메일과 동영상을 시청했다. 영상 속 여자가 유튜버인 것 같았으며,..
"안녕, 오늘도 우리 채널을 봐 주는 구독자 여러분! 미스트리스입니다~ 오늘은 저주받은 저택을 탐험할거예요. 후, 일부러 필라델피아에서 여기까지 온 보람이 있었으면 좋겠네요. 안그래도 이 곳이 엄청 흉흉한 곳이라고 해서 한번쯤 와 보고 싶었는데, 마침 가족들이 근처에 볼일이 있어서 여기까지 오게 됐어요. 이쪽은 저와 같이 저택을 탐험할 사촌동생 캐서린이라고 해요! ""안녕하세요~ 캐서린입니다. 근데 언니, 이 집은 무슨 사연이 있는 거야? ""이 집? 그렇지, 이 집에 얽힌 얘기를 해 주지 않았구나. 이 집은 오래 전에 집주인이 의문사 한 뒤, 아무도 살지 않는 집이 된 지 오래야. 집 안의 집기류도 그대로고, 수도마저 그대로지. 그리고, 귀신이 나온다는 소문도 있고 말이지. ""언니 답네. 이런 곳까지..
미국, 어느 집. 꽤 고급스러운 저택이었지만 아무도 살지 않는 그 집은, 겉보기엔 고급스러워 보였지만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주인 잃은 저택을 점령한 것은 공기중을 떠다니는 무수한 먼지들과 곤충, 그리고 식물들 뿐이었다. 저택의 담장을 반 이상 점령한 담쟁이덩굴, 그리고 죽어버린 나무에 자란 버섯과 저택 안을 가득 메운 거미줄. 그 중에서도 특히 이례적인 곳이 있다면 저택 주인의 안방이었다. 안방에는 커다랗고 둥근 거울이 하나 있었다. 스탠드에 세워진 거울은 테두리의 위와 아래, 왼쪽과 오른쪽을 고급스럽게 장식해 둔 거울이었다. 테두리는 나무였고, 원래 검은 색이었는지 손떄가 타서 검은 색이 된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테두리의 색깔 떄문에 더욱 고급스러워 보였다. "으차... 여기가 그 곳..
미기야와 라우드, 그리고 파이로와 현은 의뢰를 받고 교토에 와 있는 상태였다. 이토(異等)가에서 온 의뢰는, 차기 당주가 될 예정이었던 이토 야키리와 그의 여동생인 이토 아라즈를 찾아달라는 의뢰였다. 의뢰를 한 사람은 이토 가의 현 당주이자 남매의 아버지인 이토 히사무였다. "저희 이토 가는 대대로 부적술로 유명한 가문입니다. 하지만, 그 또한 부적술을 이을 당주가 없으면 의미 없지요. ""그렇군요... 아무래도 가문을 이어야 하니까요. 아드님과 따님이 사라진 시점은 언제인가요? ""둘 다 사라진 지는 2년 정도 되었습니다. ""2년이라... 찾기는 힘들지만, 아마 찾을 수는 있을 겁니다. 부적술을 쓰는 자는, 부적술을 쓰는 자를 알아보기 마련이니까요. ""꼭 좀 부탁드립니다. 둘 다 돌아오지 않으면, ..
"저 분이 김성학 교수님이셔? ""응, 이번에 아드님도 이 병원에서 레지던트로 일한대. ""정말? 와, 교수님 아드님도 공부 잘 하셨나보네. " 저명한 잡지에도 논문을 몇 번 냈던 김성학, 그리고 그의 아들 김학재는 H 대학병원에서 함꼐 일한다. 오랫동안 병원에서 교수로 있었던 김 교수의 아들이, 이번에 H 의대를 졸업하고 그 대학의 병원에 왔기 때문이다. 레지던트인지라 일은 고단했지만, 아버지가 유명한 교수이니만큼 학재는 아버지의 이름에 누가 되지 않도록 열심히 일했었다. 무언가에 의해 살해당하기 전까지는.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사인은 나왔어? ""그게... 부검의도 충격을 받아서... ""대체 얼마나 처참하길래 충격을 받은 거야? ""온 몸에 동물이 물어뜯은 자국이 있었어요. 그것도 쥐나 고양이같..